北, ICBM 카드로 美와 양자담판…시험대 오른 ‘달빛정책’

      2017.07.04 17:54   수정 : 2017.07.04 22:07기사원문


지난달 지대함 순항미사일 발사 이후 약 한 달 만에 북한이 4일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면서 '김정은식 마이웨이'가 다시 시작됐다. 새 정부 들어서도 매주 미사일을 발사하던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6.15 메시지' 이후 잠잠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기대가 모였지만 결국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대미 직접협상 카드'를 손아귀에 넣고 흔들겠다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구상이 본격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관계 중심의 한반도 평화를 이뤄나가겠다는 '달빛정책(문재인정부 대북정책)'이 시작부터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회담의 끝과 중.러 정상회담 시작,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과 한중.한일.한미일 정상회담 등 굵직한 국제 이벤트를 앞두고 북한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나섰다고 해석한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주도권'을 얻어 온 문재인정부의 뜻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단일팀 구성 구상에 이어 곧 '베를린 선언'을 통해 10.4선언 계승 등 남북대화 로드맵을 밝히려던 청와대는 이번 도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라는 국제사회 틀로 들어가 당분간 제재 국면을 이어나가야 하게 됐다.

■北 '예상시점'에 도발

7월 4일은 미국 최대 국경일인 독립기념일과 7.4 남북공동성명 45주년이 겹쳐 그동안 북한의 유력한 도발시점으로 꼽혀왔다. 또 한미·중러 정상회담이 열리고, 독일에서 G20 연쇄 정상회담까지 앞두고 있어 북한이 미사일 도발로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유리한' 시점으로 분류됐다.
북한이 예상대로 도발에 나선 것은 존재감 과시를 통해 '미국과 직접 얘기하겠다'는 목적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도발 의미와 관련, "한·미가 정상회담을 했지만 우리가 주도한다. 한국이 아닌 우리가 협상의 당사자라는 것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태도가 바뀌기 전까지는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로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정책 주도권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자마자 큰 과제를 떠안게 된 형국이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은 "이번 미사일은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정부 대북정책에는 호응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현"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북한 도발에 깊은 실망과 유감"의 뜻을 감추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 당국의 초기 판단으로는 중장거리 미사일로 추정하고 있으나 ICBM급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정밀분석 중"이라면서 "ICBM급일 경우 이에 맞춰 대응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미사일이 북한의 주장처럼 ICBM이라면 당분간 대화 등 대북유화책은 힘을 받기 어려워진다. ICBM은 핵도발과 같이 전 세계를 사정권으로 하는 '전략무기'로 분류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면서 '국제사회' 프레임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그 연장선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 등 우방국과 공조해 금일 도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조치 및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ICBM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 강도가 훨씬 더 커지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갈지(之)자 달빛정책

이 경우 달빛정책의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엔을 중심으로 대북제재가 조여올 경우 우리도 이에 발맞춰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남북관계라는 '여지'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이 핵동결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핵동결 입구론'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동결'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면서 "'선핵폐기.후대화'를 내세웠던 지난 정권과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본부장은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당초 구상대로 (핵에 한정하지 말고) 포괄적 접근을 해야 한다. 동북아 공동체 등에서 북한과 우회적인 접촉을 시도하는 등 융통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인도적 지원보다 더 적극적인 정책을 내놔야 한다"면서 "독일에서는 단호한 대북 의지와 함께 더욱 적극적이고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강하게 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상된 수순'이라며 장기적 접근을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평창올림픽 참가 제안에 대해 "민간 차원의 교류는 정치.군사적 문제와는 분리해 보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재인정부 정책의 밑바탕을 그리는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분과위원인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길게 보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psy@fnnews.com 박소연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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