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갑질 백태…“학계는 절대왕정”

      2017.08.09 17:41   수정 : 2017.08.11 18:25기사원문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입을 열면 찍힌다" 대학원생은 학문의 길을 포기할 각오 없이는 교수의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원생 생계부터 졸업, 미래진로까지 교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교수가 대학원생을 성추행하거나 학생연구원 인건비를 횡령하는 일이 드러났다.

수면으로 드러난 대학원생 눈물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전언이다. 상당수는 교수와 대학원생 간 권력관계에 의해 불합리를 고발하지 못한다.
배신자로 낙인 찍히거나 연구 분야에서 퇴출될까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파이낸셜뉴스는 2차례에 걸쳐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대학원 세계의 불합리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졸업공연에 1100만원...교수, 돈 잔치?

"예체능 대학원생은 어딜 가나 예의 바르다는 소리 들어요. 하도 교수를 극진히 모시는 게 몸에 배니까요"

9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지역 대학 무용과 석사 A씨는 졸업공연에 1100여만원을 지출했다. 대관비 등을 제외하고 교수에게 쓴 돈도 상당하다. 그는 관례적으로 1인당 10만원을 웃도는 고급식당에서 교수를 접대했다. 공연에 사용하는 음악파일을 받는 명목으로 한 곡당 50만원씩 3, 4곡에 해당하는 금액을 교수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교수가 건넨 것은 몇 년째 반복되는 mp3 파일이었다. 대학원 졸업은 비용이 많이 드는 졸업공연 외에도 시험, 논문 등 다른 방법이 있으나 교수는 공연을 공공연하게 강조했다고 한다. 매 학기 500만원을 넘는 등록금 외에도 강의마다 다과를 준비하거나 교수가 주최하는 공연 티켓을 의무적으로 몇장 이상 판매해야 한다.

A씨는 "교수가 지인 출판기념회에 대학원생을 동원해 공연을 연다"며 "공연 후 돌아온 건 햄버거"라고 허탈해 했다. 그는 "교수가 기본 300만원대 의상을 자신의 지인에게 맞출 것을 권하면서 '무대경험을 주는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 옷을 값싸게 주는 것'이라고 생색을 냈다"고 토로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교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원 졸업 후 교수가 공연단, 시간강사 등 향후 진로를 연결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A씨는 대학 감사실을 통해 교수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신고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과 주소까지 밝혀야 하는 서류 양식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그는 "교수에게 목소리를 내거나 학교제도를 이용하면 '스승 팔아먹는 X'이라는 시선 때문에 다시는 무대에 발을 못 디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새벽 3시 카톡, 폭언 등 다반사

수도권의 한 공과대학 석박사통합과정인 B씨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이다. 올해 초 결혼한 B씨는 신혼의 달콤함을 반납한지 오래다. 새벽 3시면 교수 카톡이 울린다. 교수가 원하는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1주일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

B씨는 "교수가 군대 야간순찰처럼 새벽에 연구실을 급습해 진행사항을 묻는다"며 "연구가 더디면 교수에게 온갖 폭언이 날아온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공대 대학원생은 자신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생이자 국가.기업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원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지만 정작 학문보다는 교수가 지시하는 연구과제에 매몰되기 쉽다. 연구과제를 수행할 때 연구비 명목으로 교수와 대학원생 인건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B씨는 참여한 연구과제에 따른 정당한 인건비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기본법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학생연구원은 1억원 이상 국가과제 수행 시 최소 석사 월 80만원 박사 월 120만원을 지급받아야 한다. B씨는 최소 인건비 120만원이 넘는 노동을 했지만 교수가 그 이상의 금액을 회수했다는 것이다. 명백한 법률위반이다. B씨는 교수에게 항의할 수 없는 이유로 '제도'를 꼽았다. 대학원생은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아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다. 정해진 근로시간이 없어 교수 입맛에 따라 24시간 일해야 한다. 교수 역시 '돈 벌러 대학원 왔냐'는 식이다.

그는 "회사는 내규와 노조, 이직 등 윗사람에게 대응할 방법이 있다. 그러나 학계는 절대왕정"이라며 "연구실에서는 교수가 법이다. 다른 대학원을 가려 해도 교수끼리 강력한 네트워크 때문에 뒷말이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서울대 인권센터의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가 서울대 대학원생 중 43.6%는 인권침해 경험이 있더라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절반이 넘는 57.4%가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해당 경험이 공공연한 것으로, 관행처럼 여겨져 대응하지 못했다'는 응답도 44.9%에 달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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