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학생 보호 ‘지도교수 변경’ 절실
2017.08.13 17:59
수정 : 2017.08.13 17:59기사원문
서울의 한 체육대학원 석사과정 A씨는 지도교수가 "돌대가리 XX"라고 폭언해도 참았다. 운전기사, 화장품 구입 등 교수가 원하는 사적업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넘길 수 없던 것은 교수와 술자리에서 겪은 성적 모멸감이었다.
참다 못한 A씨는 '입'을 열었다.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문제 제기했다. 검찰에 고소장도 제출했다. 대학 측은 공부를 계속 하고 싶으면 공론화하지 말라고, 학과장 역시 "(비슷한 일을 겪은) 과거 학생도 교수와 각서를 써서 조용히 졸업하고 잘 넘어갔다"고 말했다.
A씨는 지도교수 변경을 원했다. 대학 측은 "아무리 피해자지만 (다른 교수가) 피해학생을 받아줬다가는 교수들 간 화합에 저해된다" 는 이유로 변경을 미뤘다. 마지막 논문 학기였던 A씨는 휴학을 신청했으나 승인되지 않아 미등록 제적당했다. 지도교수 동의가 필요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1인 시위 등을 통해 강하게 항의하자 대학은 비로소 한 학기 만에 지도교수를 변경했다. A씨는 "피해 학생이 목소리를 내면 절대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대개 참거나 쉬쉬 한다"며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학원 인권문제 발생 이후 '대응'을 위해서는 △인권센터 설치 △교원 징계 실효화 △고발 피해자 보호제도가 절실하다고 학계 및 정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인권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수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오히려 피해학생이 학업을 그만두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권침해 대응 위해 교수 징계 강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학인권센터 설치의무화법' 발의에 대해 "갑질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학교는 개선돼야 한다"며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로 2차 피해를 막자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노 의원실과 교육부가 전국 237개 대학 인권센터 설치 현황 조사결과, 응답한 97개 학교 중 센터 설치 학교는 19개였다. 전체 대학 19.6%에 불과한 것이다.
대학 인권센터는 강제적인 징벌효과나 독립적인 심의가 어려워 인권센터 존립 자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학생 대표 등이 참여하는 기구가 구성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대 인권센터 원경주 변호사는 "인권센터는 조사권한과 징계요청권한이 있지만 징계요청은 어디까지나 권고 효력"이라고 전했다. 징계의 근거가 되는 사실 조사는 인권센터에서 맡지만 최종적 징계처분은 징계위원회에서 한다.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는 교원 징계 실효화를 위해 '징계위원회 학생대표 참여입법'을 요구했다. 현행 교내 징계위원회는 '교육공무원 징계령 및 사립학교법 제62조'에 따라 법관, 교수, 공무원 등만 징계위원회에 참여토록 해 학생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김종경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현 징계위원은 징계 받는 교수의 동료여서 셀프징계 논란과 솜방망이 처벌 가능성이 있다"며 "학생대표가 참여해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교원 징계 강화 목소리도 높다. 교원 중징계는 파면, 해임 다음이 정직 3개월이다. 징계위원회가 파면, 해임처럼 부담스러운 징계를 피해 정직을 처분하는 결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면직, 강등, 정직 1년 등 징계 처분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권위주의 뿌리 깊어 수평적 문화 정착돼야"
지난 10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서울대 학부, 대학원 재학생들과 박사 졸업생들은 사회학과 H교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권고한 정직 3개월이 충분치 않다는 것. H교수는 4년간 학생들에게 자신의 집에 핀 곰팡이를 제거하게 하는 등 갑질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인정돼 정직 3개월 권고를 받았다. 징계위원회 회부 상태로, 징계가 확정돼도 3개월 뒤 H교수는 교단에 다시 설 수 있다.
대학원생들은 특히 '고발 피해자 보호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정직 이후 지도교수가 교단으로 돌아올 경우 다시 고발 피해자 학생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A씨 경우처럼 고발 피해자 학생이 휴학신청을 할 때 지도교수에게 직접 결재받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부와 달리 대학원은 지도교수에게 도제식으로 배우다보니 권위주의 풍토가 뿌리 깊다"며 "수직적 대학원 문화를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원생 이슈가 제대로 고발될 제도가 많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인권문제가 발생하면 일부 가해 교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대학이 전체 교수들에게 공지하고 주의를 주는 방식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