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에 울퉁불퉁 혈관?…정계정맥류엔 중장년층도 무리 없는 '색전술'
2017.08.25 18:15
수정 : 2017.08.25 18:15기사원문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사는 사업가 김 모씨(67)는 최근 손자와 목욕탕에 갔다가 손자로부터 "할아버지 다리 사이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신경이 쓰였다.
그는 20대 무렵부터 고환에 혈관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는데, 통증이나 불임 등 특별한 문제가 없어 방치해왔다. 어린 손자의 솔직한 말에 당황했지만, 이왕 보기 싫은 혈관을 지우자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김 씨는 "혈관이 튀어나온 현상이 질병인 줄도 몰랐고, 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생소하다"며 "통증은 없지만 미관상의 문제가 오랜 기간 신경 쓰였고, 간혹 고환에 열감이 생기거나 땀이 많이 나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에 치여 살던 젊은 시절에는 치료 생각도 못했는데 여유가 생긴 지금, 미뤄왔던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며 "나이 때문에 처음엔 걱정했지만 비수술적 치료법인 '색전술'로 간단하게 교정해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정계정맥류는 남성의 15%에서 유발되는 비교적 흔한 혈관질환이다. 고환 주변의 정맥이 역류하며 울퉁불퉁 튀어나오는 게 주증상이다. 단순히 혈관이 튀어나오는 데 그치지 않고 열감 및 통증, 불쾌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남성들은 단순히 은밀한 부위에 혈관이 튀어나왔다고 병원을 찾지는 않아 진단율이 저조하다. 이런 탓에 질환 자체가 생소하게 여겨진다.
정계정맥류의 원인은 대개 선천적인 혈관 판막 손상이다. 혈액을 심장으로 보내는 펌프 역할을 하는 판막에 문제가 생기면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한 곳에 고이는 '울혈 현상'이 나타난다. 이 같은 현상은 정맥을 확장시키고, 구불구불 늘어지게 만든다. 정계정맥류는 고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남성 불임·난임 원인을 일으키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정계정맥류 환자는 10~20대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한창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 호발하는 게 특징이다. 최근 난임검사를 받다 뒤늦게 자신이 정계정맥류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30~40대도 적잖다. 또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60대 이상 중장년층도 자신의 증상이 이 질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내원해 정계정맥류 관련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추세다.
민트병원 정맥류센터 김건우 원장(인터벤션 영상의학과 전문의)은 "중장년층의 정계정맥류는 대부분 청년기에 발병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엔 질환 정보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생식기에 문제가 생기면 극심한 통증이나 불편함이 있지 않은 이상 치료받기보다 숨기려는 시대의 분위기가 강해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맥류 치료의 대세는 복잡한 수술보다 간단하지만 효과가 우수한 '비수술적 치료법'이 대세다. 고령환자에게는 수술에 필요한 전신마취나 피부절개 자체가 다른 질환을 일으키는 문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비수술 치료가 '색전술'이다. 역류 문제가 발생한 문제혈관에 더 이상 혈액이 공급되지 않도록 차단하면 간단히 교정할 수 있다.
기존 정계정맥류 수술은 복강경을 삽입하거나 사타구니 부위를 절개한 뒤 고환정맥을 묶는 방법이 활용됐다. 반면 색전술은 최소침습으로 팔뚝 혈관에 카테터를 주입, 첨단영상장비로 혈관을 보면서 정계정맥류의 원인이 되는 고환정맥을 경화제와 백금실로 차단시킨다. 이는 일종의 '인터벤션 시술'로 안전하고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무엇보다 수술 후 나타날 수 있는 '음낭수종'(고환에 물이 차는 증상) 등의 부작용도 없다.
정계정맥류 색전술은 기존 절개수술요법에 비해 재발률이 낮은 것도 장점이다. 영국의 비뇨기과 의사인 Nabi G 등이 2004년 비뇨기과 저널 'Urology'에 게재한 논문에서 정계정맥류 색전술 성공률은 95.7%, 재발률은 2% 미만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탈리아 인터벤션 전문의 Gandini도 가장 신뢰도가 높은 영상의학과 저널 'Radiology'에 정맥류 색전술의 성공률은 97.1%, 재발률 3.6%라고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비교 연구자료로는 2017년 'Basic and Clinical Andrology'라는 저명한 저널에 프랑스 비뇨기과 의사인 Bou Nasr E. 등이 게재한 미세현미경하 정계정맥류 절제술과 색전술의 결과를 비교한 논문이 실렸다. 요컨대 정액검사 결과의 호전, 환자 만족도, 임신률에서 두 그룹 간 차이가 없었고 수술 후 합병증과 통증에서 색전술이 우월하다는 결론이다.
정계정맥류 색전술 치료에 특화된 민트병원 인터벤션 클리닉도 2008~2015년 색전술 치료를 받은 환자 1751명을 대상으로 추적조사한 결과 성공률 98.5%, 재발률 2.3%로 집계됐다.
색전술 결과가 과거보다 향상된 것은 혈관을 찾아들어가는 혈관조영장비, 카테터 소재, 혈관을 막는 색전물질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예전 색전술은 혈관을 막을 때 금속실(코일)만 활용했지만, 요즘엔 STS(Sodium Tetradecyl Sulfate) 경화제로 혈관을 막아 치료효과를 높이고 있다. 액체 상태의 STS는 원인 혈관 및 재발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 혈관까지 동시에 막아 정맥류 재발률을 크게 떨어뜨리며, 치료한 혈관 외에 다른 곳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안전성이 입증됐다.
색전술은 당일 진료 및 시술, 퇴원까지 빠르게 진행돼 바쁜 사업가·회사원 등 중장년층은 물론 부대로 빨리 복귀해야 하는 군인들이 선호한다. 수술 다음날부터 바로 샤워할 수 있고, 수술상처도 없으며, 1주 뒤부터 운동할 수 있는 등 회복이 빨라 만족도가 높다.
김건우 원장은 "정계정맥류는 수술만이 치료법이던 시절에는 비뇨기과 질환으로 분류됐지만 신장정맥에서부터 나오는 고환정맥의 역류에 기인한 혈관질환이라는 게 명백해지면서 혈관질환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색전술의 치료성적이 몇 년 사이 월등히 향상되면서 음낭수종, 신경손상 등의 부작용을 피하게 됐고 기본치료로 대접해도 무방하다"며 "수술 후 재발된 경우에 색전술을 시도해도 역시 만족스러우며, 고환정맥을 잘라내는 수술은 색전술 후 재발된 2~3%의 환자에게서나 고려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