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느냐, 마느냐 이젠 정부가 결단할 때
2017.09.04 19:35
수정 : 2017.09.04 19:35기사원문
복날만 되면 수십년째 되풀이되는 개고기 식용 논란의 핵심은 동물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인식 변화에 있다. 동물 반려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며 개와 고양이는 동물을 넘어 가족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공원이나 거리를 다니다보면 반려동물과 함께 거니는 사람이 몇년 전보다 눈에띄게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가 이뤄지면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개고기 식용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정부가 이것도,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개 식용' 여전히 '뜨거운 감자'
우리나라에서 개고기 식용 논란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됐으니 30년간 이어져 온 셈이다. 이후 동물보호단체가 활발히 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이후 개고기 식용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련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 수준이다. 해마다 삼복시즌만 되면 동물보호단체들은 전국의 개농장이나 도축장, 판매상 등에서 자행되는 비위생적 사육과 유통 실태를 폭로하고, 반대로 개 사육농가.판매상인 등 육견(育犬)인들은 "개고기 식용 합법화하라" 도심 집회에 나선다.
올해도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건국대 수의과대학에 의뢰해 개고기 항생제 사용실태를 조사해 일반 축산물의 96배에 달하는 항생제 검출을 폭로했다. 항생제는 몸 속에 쌓이면 내성으로 정작 필요할 때 효과를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비위생적이고 위험하니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육견단체협의회 등 이른바 개고기 산업 종사자들은 '100만 육견인의 생존권 사수 총궐기대회'를 열어 최근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과 단속에 대해 맞서고 있다. 여전히 개고기 식용은 '뜨거운 감자'다.
이런 상황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반려동물 가구의 급증에도 여전히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아이러니함에 있다. 2015년 서울시의 조사 결과 응답자 2133명 중 '먹지 않는다'는 사람이 58%로 가장 많았지만 '개고기를 1년에 1회 이상 먹는다'는 사람도 비슷한 수치인 41.3%에 달했다. 연 1~2회가 22.1%, 3~4회 9.5%, 5회 이상도 10.2%에 달한다.
육견인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개 식용은 전통 식문화이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과 육견과 반려동물은 다르다는 것. 서울시 조사에서도 '개 식용은 전통 식문화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37.8%)이 '바뀌어야 할 구시대 문화'라는 답변(30.3%)보다 많았다.
■실효 다한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개고기 식용 논란은 사실 문화적 문제다. 전통적 '음식'의 하나로 여겨져 온 것인 만큼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중립적 입장에서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묵은 갈등은 임계치에 다다랐고,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실효성이 다했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지난 7월 시위에 나선 육견단체들은 '생존권 사수'를, 동물보호단체도 '식용 전면 금지'를 내세우며 정부를 압박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변화의 조짐도 읽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농림축산식품부가 '개고기 식용 금지'를 골자로 한 방안을 마련해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왔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곧바로 '사실무근' 해명자료를 내며 진화했다.
국회에서도 동물보호단체와 발맞춰 법안 마련을 예고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개고기 금지 법안' 발의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표 의원은 "국제 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그동안 정부에서 개고기 식육 유통과 소비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음성화시켜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관련 개 식육 금지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이어 "개고기 드시는 분, 소비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의 비겁한 '전략적 모호성' 때문에 위기에 처한 개들과 국민건강을 모두 지켜내는 개 식육 목적 사육과 도축 및 판매 행위를 금지하는 입법안"이라고 덧붙였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전진경 이사는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개 도살은 엄연한 불법임에도 그동안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육견단체에서는 먹는 개와 키우는 개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 인식에 따라 개를 나눈다는 것이 어떻게 합리적인가. 동물 학대가 심각해서 당장 불법화해야 하지만 아직도 먹고 파는 사람이 있으니 단계적으로라도 불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