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파트 관리비를 왜 내가 내고 있을까

      2017.09.09 09:00   수정 : 2017.09.09 09:00기사원문
아파트 경비원은 당연하듯 경비 외의 업무를 해야 했다. 일부 주민의 모욕적인 언행을 참아 온 그들이다.

올해 여름, 무더위에도 에어컨 없는 경비실을 지켜야 하는 아파트 경비원의 고통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황송마을 아파트와 분당구 까치마을 신원아파트 입주자들은 관리비 부담을 감내하고 자체적으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설치 비용의 50~90% 보조금 지원 소식에 공동주택들의 신청이 빗발쳤다. 각 지자체에 따르면 수원시 258대, 안양시 232대, 순천시는 100대를 지원했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쏟는 미담이다.
그러나 입주자들이 자체 해결해야 할 비용을 애꿎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게 맞는지 따져볼 문제다. 세금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는 “조례로 정해 공동주택관리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라는 현행법이다.

이번에 경비실 에어컨을 지원했던 모 지자체 관계자는 “단독주택 주변 등 도시의 일반적인 기반시설은 지자체가 관리한다"라면서 "공동주택도 마찬가지이므로 (에어컨 지원)도 같은 차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세금으로 경비실의 에어컨까지 지원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소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 근로기준법은 경비실 에어컨에 대해 뭐라 말할까

경비원은 감시단속직으로 분류된다. 근로기준법은 이들에게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근무환경에까지 관심 있을 리가 없다.

꼭 경비원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에어컨 찬바람 때문에 냉방병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경비원 외에도 가혹한 여름·겨울 기후에 직면하는 이들도 많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근로자가 고용주에게 환경 개선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근로자의 근로·휴게 환경 수준은 고용주의 선의나 관행에 기대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임금, 휴가, 계약관계를 중심으로 짜였다. 법의 목적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 보장”이다. 그러나 아직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만한 근로자의 환경에 관한 규정은 없다.

제76조(안전과 보건)가 그나마 가장 가깝다. 하지만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관하여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라고 단 한 줄로 다른 법에 기댄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 발생 예방이 중심이다. 기계·기구·설비 등에 특별한 위험요소가 있는 작업환경이 주 관심사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만한 근로자의 환경을 위한 법이 아니다.

상시 10명 이상 근로자가 있는 사업체가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하는 취업규칙도 무용지물이다. 고용노동부가 각 취업규칙을 심사하는 기준 총 11개 항목과 100개가 넘는 중점착안사항이 있다. 여기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만 국한해 심사 기준을 정하다 보니 주로 유해·위험작업에 관련한 이야기 뿐이다.

■ '경비실 에어컨 의무법'은 없나

<공동주택관리법>은 65조에서 경비원 등 근로자 처우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 아파트 자체 관리규약에 적용돼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법은 65조 내용을 포함하지 않아도 관리규약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각 아파트의 관리규약이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지자체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관리규약의 준칙>을 정해야 한다. 이 준칙은 공동주택관리에 필수적인 사항들을 각 관리규약에 넣도록 강제하고 있다. 각 공동주택 관리주체는 준칙을 적용해 자기 아파트의 관리규약을 만든다. 그 후 지자체에 신고하면 효력이 생긴다.

현재는 경비원 등 근로자 처우 관련 사항을 관리규약에 포함하지 않아도, 준칙에 따른 필수사항만 넣으면 된다.

공동주택관리법의 <관리규약의 준칙>은 시대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다만 입주자의 불편해소에만 발휘된다.

최근 층간소음 문제가 불거진 후 ‘공동주택 관리규약에는 층간소음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생겼다.
이어 내년 2월에 ‘공동주택 관리규약에는 간접흡연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라는 규정도 시행될 예정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관리규약의 준칙>을 경비원 등 관리직원의 인간다운 환경을 보장토록 개정하는 게 법제적 해결책이다.


이에 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보겠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ohcm@fnnews.com 오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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