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지 않는 나라

      2017.09.12 17:18   수정 : 2017.09.12 17:18기사원문
'기부왕'으로 불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롤모델로 삼는 사람이 면세점 체인 DFS 창업자인 찰스 피니(86)다. 피니는 지난 35년간 전 재산인 80억달러(약 9조원)를 남몰래 기부했다. 그는 "난 돈을 정말 좋아하지만 돈이 내 삶을 움직이지는 못한다"는 신조 아래 15달러짜리 시계를 차고 집도 차도 없이 지하철을 이용했으며 비행기도 이코노미석을 고집했다.



미국은 기부왕국이다. 워런 버핏은 지금까지 275억달러를 기부했다.
빌 게이츠가 기부한 주식의 총액은 약 500억달러로 추산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2년 전 "우리 딸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며 주식 지분 99%(당시 시가 52조원)의 기부를 약속했다. 미국인 10명 중 7명은 기부활동에 참여하며 연 수입의 2% 이상을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기부문화는 미국, 유럽 같은 부자나라의 전유물일까.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2016년 세계 기부지수'를 보면 놀랍게도 세계 1위 기부국가는 최빈국인 미얀마다. 독실한 불교국가 미얀마에서는 매일 아침 승려들의 탁발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시민들은 밥과 반찬, 국을 정성스레 준비해 승려들의 항아리를 채워준다.

한국의 기부문화는 턱없이 열악하다. 기부지수 순위는 62위로 분쟁국인 이라크(39위)에도 뒤졌다. 우리가 원래 이렇게 기부에 인색했던 것은 아니다. 400년 부를 일군 경주 최부자집은 자선을 매우 중시했다. 최부자집 가훈은 △1만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 땅을 늘리지 마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경기침체 등으로 모두들 여유가 없는 탓인지 우리의 나눔활동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기부자들은 기부금에 가혹한 조세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얼마 전 어느 기업인이 장학재단에 18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한 데 대해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됐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기부를 뇌물수수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기부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개개인의 인색함을 탓하기 앞서 올바른 기부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ljhoon@fnnews.com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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