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리'로 둔갑한 창원 '콰이강의 다리'... 일제침탈 아픈 역사 몰랐나

      2017.09.16 05:10   수정 : 2017.09.16 07:03기사원문


최근 경남 창원시가 '2018 창원 방문의 해’을 대비해 적극 홍보에 나선 '콰이강의 다리 스카이워크'(이하 콰이강의 다리)에 대한 아픈 역사를 배제한 마구잡이식 행정 처사가 지탄을 받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에는 1957년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에서 이름을 따온 동명 콰이강의 다리가 있다. 이곳은 1987년 의창군 시절 구산면 육지와 저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한 '옛 저도 연륙교'로 2004년 바로 옆에 새 연륙교가 들어서면서 제 역할을 다하고 보행교로 사용됐다.



이를 지난해 시에서 사업비 7억원을 투입해 길이 170m, 폭 3m 규모로 바닥에 투명 유리를 깔아 아래가 훤히 보이도록 하는 '바다 위를 걷는 다리’로 탈바꿈시켰다.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콰이강의 다리는 금세 인기를 끌었고 1일 평균 1600여 명, 주말에는 7600여 명이 찾아왔다. 지난달에는 개장 5개월 만에 입장객 50만 명이 돌파하면서 마침내 창원의 새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 창원시, 영화의 다리와 외형닮아 지은 마구잡이식 이름 '콰이강의 다리'
그러나 시는 관광객 50만 명 이상이 다녀갈 동안 콰이강의 다리에 아픈 역사를 왜곡시켰다.


지난달 8일 설치한 콰이강의 다리-스토리텔링 안내판에 따르면 다리 이름의 유래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동명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다리의 모습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포로들이 콰이강 계곡에 건설한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철도용 다리와 닮아서다'라고만 안내되어 있다. 웹사이트 '창원관광', 관광안내지 등에도 마찬가지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잘 알려진 만큼 기성 시대가 영화의 배경을 이해한다지만 젊은 세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뿐더러 아무리 외형이 닮았다고 해도 이름을 그리 짓는 건 개연성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이 이름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의해 세워진 다리의 이름으로 더 나아가 우리와는 한국인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얽혀 있는 만큼 충분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 일제 동남아 침략 전쟁의 상징 콰이강의 다리가 '사랑의 다리'?
지난 3월 8일 창원시가 발행한 다리 관련 보도 자료의 제목은 "콰이강의 다리 스카이워크 거닐며 사랑 이루세요"다. 이어서 '‘스카이워크’는 걷는 것만으로도 교량 아래 쪽빛 바다에 금방이라도 빠져들 것 같은 스릴이 느껴져 누구나 한 번쯤 짜릿한 기분을 체험해보고 싶어진다.'라고 홍보했다.

시는 한 발 더 나아가 다리 입구에는 일 년 만에 받아볼 수 있는 '느린 우체통'과 연인들끼리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사랑의 열쇠' 조형물을 설치해 열쇠를 채울 수 있게 했다. 또 일부 언론 보도와 같이 연인이 손을 놓지 않고 다리 끝까지 건너 프러포즈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스토리 텔링 마케팅도 적극 활용했다.



■ '콰이강의 다리'는 일제 동남아 침탈의 상징이자 우리의 아픈 역사
'원조' 콰이강의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1943년 일본군이 미얀마로 군인과 전쟁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태국 칸타나부리주 콰이강 계곡에 세운 '버마 철도'의 일부다. 이곳은 당시 일제의 동남아 침탈의 상징인 동시에 우리와는 한국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의 상흔이 깃든 곳이다.

영화에선 영국군이 주를 이룬 반면 실제 이 다리는 다국적 전쟁 포로의 피로 세워졌다. 영국군과 오스트레일리아군, 네덜란드군 등 연합군 전쟁 포로 6만여 명과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 식민 국가에서 끌려온 노동자 20만 명이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약 11만6천여 명이 사고·질병·부상·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할 만큼 악명 높았다.

특히 일본군은 인근 '껑쑤피니'에 한국, 중국, 대만 등지에서 끌고 온 여성들로 위안소를 운영했고 한국인 남성은 강제징용돼 연합군 포로들을 관리하는 간수로 노역시켰다.

2015년 태국의 정부가 공개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 자료에 기록된 태국 포로수용소의 한인 위안부는 수는 1500여 명, 이중 463명은 명단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중에는 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끌려갔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2011년 태국에서 생을 마감한 위안부 피해자 고(故) 노수복 할머니도 포함된다.

■ "'조선총독부'와 닮았다고 해서 '조선총독부'라고 부를 수 있겠나"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명분없는 이름짓기와 영화를 통해 붙여진 이름이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2014년 행정자치부가 출연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이재철 운영관리국장은 "모양 형태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을 그리 짓는다면 이건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들은 아직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데 뚜렷한 명분없는 이름이 한편으로 희생자를 폄하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면서 "전문가나 충분한 여론 수렴을 하지 않은 지자체의 몰지식한 행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혜인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는 "콰이강의 다리는 영화 이전에 일제가 전쟁 중에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든 다리의 이름이다.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나 중국, 동남아 등의 국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건물이 '조선총독부'와 닮았다고 해서 '조선총독부'라고 부를 수 있겠나.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건 잘못됐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유현 언론인·한태교류센터(KTCC) 대표는 "지자체가 자신의 관광브랜드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뭐라도 하나 붙들고 가려는 것은 조금 이해는 간다"면서 "하지만 지금도 콰이강 주변은 일제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서부의 유명 관광지가 됐지만 이 관광루트에는 연합군 포로 6982명이 잠들어 있는 연합군 공동묘지, 제쓰(JEATH) 전쟁 박물관 등을 찾는 등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코스도 많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창원시 관광과 관계자는 "콰이강의 다리란 이름은 옛저도연륙교를 영화의 다리와 닮았다고 해서 그리 불리어 왔다.
이를 이번에 공식화 한 것이다"면서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다만 "현재 안내판은 임시 안내판이다.
추후 왜곡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새로운 안내판을 만들 때 재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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