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의 외침 “비혼입니다. 그래서 어쨌다고요?”

      2017.09.23 09:00   수정 : 2017.09.23 09:00기사원문

“애인은 있어?”
“결혼은 언제 할 거야?”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비혼이 자연스러운 시대이지만 여전히 사석에서는 불편한 질문들이 오고 간다. 혼자 잘 살고 있지만 결혼을 하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심지어 돌싱이 처녀 총각보다 더 낫다는 말까지 들린다.

결혼은 개인 선택의 문제일 뿐인데 남의 미래에 관심을 갖고 걱정해주는 ‘오지라퍼’.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데 왜 본인들이 불안해하는 것일까?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고 살아 줄 수도 없는데 결혼을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때문에 청춘들은 괴롭다.


오래간만에 본가인 지방에 내려간 김안나(가명·32)씨는 어머니, 사촌 언니와 함께 집 근처 맛집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50대 중년으로 보이는 택시운전사의 유쾌한 말솜씨 덕분에 즐겁게 목적지로 향하던 중 돌연 결혼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택시운전사는 김씨에게 나이를 묻더니 “32살이 됐는데 결혼 안 했으면 쓸모없으니 택시에서 내려라”라며 농담을 던졌다. 택시운전사의 말에 어머니와 사촌 언니는 웃었지만 김씨는 속으로 울었다.

김씨는 “나이를 묻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이야기까지 거리낌 없이 말해서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며 “남의 인생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남자친구는 있다고 말했더니 ‘그 나이에 애인 없으면 안 되지’라며 비웃는 듯 말을 하는 모습에 정말 화가 났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골드미스 최하니(가명·40)씨는 독신 생활이 만족스럽다. 혼자 살아서 불편한 점은 없고 오히려 자유롭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요즘 최씨는 고민이 생겼다. ‘저 나이까지 결혼을 안 했으면 성격에 문제가 있을 거다’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무시가 잘 되지 않는다.

최씨는 “사실 혼자 평생 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다”며 “비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을 안 한 사람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한 친구는 결혼한 적도 없는데 주위의 시선 때문에 ‘돌싱’이라고 거짓말까지 했다”며 “왜 거짓말까지 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박보람(가명·29)씨가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단어는 ‘결혼’이다. 어른들이 나이가 찼다고 생각하는지 만날 때마다 묻는다. “30대 되면 결혼하기 더 힘들어진다”, “이것저것 너무 조건을 따지지 마라”, “언제 결혼해서 언제 아기 낳을 것이냐” 등 비수를 꽂는 말을 자주 한다.

박씨는 “어른들이 본인들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벌써 노처녀 취급을 한다”며 “어느 날은 엄마가 ‘빨리 결혼해라’라고 스치듯 말한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불같이 화를 낸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어 “주위에서도 나이에 쫓겨 결혼한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벌써부터 이번 추석이 걱정된다. 연휴가 길어서 다른 때보다 친척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박씨는 10일 연휴 기간 내내 쉰다. 하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가령, 결혼을 하면 행복하고 안 하면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논리인지 아직도 사회적인 시선은 결혼을 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못 하는 사람을 인생의 패배자처럼 취급해 버리기도 한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 이상 ‘결혼’이라는 제도를 강요하면 안 된다. 결혼의 판단 여부는 본인들 몫이다.
이제는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때다. 청춘들은 말한다.
“비혼입니다. 그래서 어쨌다고요?”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