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역사의 순간에는 커피가 있었다
2017.09.27 19:40
수정 : 2017.09.27 19:40기사원문
아침에 일어나 또는 식사 후에 커피 한 잔, 어느새 일상의 공식이 됐다. 카페들이 줄지어 모인 '카페 거리'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을 보면 커피는 누군가의 기호품이라기 보다는 우리 모두의 필수품이 된 듯하다.
인류는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아프리카냐 아라비아 반도냐'로 여전히 자존심이 걸린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실 커피의 기원은 에티오피아라고 한다.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예멘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 이슬람 권역에서 향유됐던 커피는 동방무역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다.
커피와 인문학이 만난 이 책은 커피의 탄생부터 커피가 인류를 매혹시키기까지의 여정을 역사와 문화로 설명한다. 미국 작가 마크 펜더그라스트가 "커피는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원자재 중 오일 다음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하게 우리를 매료시킨 커피를 통해 우리의 삶, 역사를 흥미롭게 펼쳐낸다. 커피 인문학은 커피에 대한 또 하나의 발견이자 행복인 셈이다.
커피를 통해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첫날밤을 엿보고, 새벽길 상궁 복장을 하고 가마에 오르는 고종의 눈물을 볼 수 있다. 커피를 통해 1937년 4월 도쿄의 교도소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시인 이상의 영혼을 만나기도 한다.
그만큼 커피는 발생지인 아프리카를 비롯해 이슬람, 유럽, 한국까지 여러나라 사회 문화적 변화에 도화선이 됐다. 유럽에서 상상 외의 인기를 얻은 커피는 식민지 열풍을 타고 '노예 참혹사'를 불러오기도 했다. 16~19세기 노예선에 실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농장으로 끌려간 흑인은 무려 40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카페 문화를 퍼트린 커피는 '계몽의 힘'을 발휘했다. 프랑스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 역할을 했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독립혁명을 촉발한 보스턴 차 사건의 중요한 오브제로 한 몫하기도 했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커피를 외교에 활용한 고종과 친미 성향의 정동파, 조선인 최초로 다방을 차린 영화감독 겸 배우 이경손, '제비다방'을 운영한 시인 이상의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전직 언론인 출신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인문학'이라는 타이틀로 강의를 시작한 저자의 풍부한 식견은 커피가 어떻게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재미있게 따라가게 한다. 딱딱하지 않게 풀어낸 이야기는 내일 누군가와 만난 자리에서 편안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소재로도 훌륭하다.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