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 그게 뭔데?” 줌마들의 명절이야기

      2017.10.04 11:00   수정 : 2017.10.04 11:00기사원문



온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명절, 추석.

하지만 역대급 황금연휴를 시댁에서, 혹은 처가에서 보내야하는 이 땅의 유부녀, 유부남들에겐 명절이 달갑지만은 않다. 이미 해외로 내뺀 ‘프로 명절러’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잘나봤자, 며느리
대학교수인 J씨의 시댁은 청주다.

전날 남편의 숙취로 운전대는 J씨가 잡았다. 연휴가 길어 교통량이 분산됐다지만 청주까진 짧지않은 거리다.


겨우 시댁에 도착하니 시어머니 버선발로 뛰어나오셨다.

“아이고, 내려오냐고 힘들었지. 들어가서 좀 자라”며 남편의 등을 두드린다.

“운전은 내가 했는데...” J씨는 앞치마를 메며 생각한다. ‘하루만 버티자.’
본인도 빠지지 않는 캐리어를 가지고 있지만 시댁에선 그저 며느리일뿐이다.

미리미리 숙제형
주부 N씨의 황금연휴 플랜은 5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인 첫째아이의 학원스케줄까지 맞춰 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임시휴일이 지정되기 훨씬 전부터 9박11일짜리 서유럽여행을 예약했다.

그리고 시댁엔 9월 중순에 일찌감치 다녀왔다. “광주까지 차표 끊기도 힘들고, 애들도 힘들어서요”라는 말에 시부모님도 내키진 않지만 이해하셨다. 추석날 여러 친지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덤이다.

“내가 올라가마”
정부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L박사는 사내 커플이다. 시댁은 구미, 갈 길을 생각하면 멀미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형제 둘뿐인데 형님네가 필리핀 여행을 간다며 이미 지른 참이다. 어머님도 면이 없으셨던지 “너네도 내려오지 마라” 한말씀 하셨다. L박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덥썩 물었다. 눈 질끈 감고 올 추석은 서울에서 즐길 참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전화벨이 울리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우리가 올라가마~”.

반전의 반전, 황금연휴 날아가는 소리. 그나저나 집청소는 어디부터 손대야 하나~

그리고 여기, '80년생 김지영씨'가 있다.
신문기자인 K씨. K씨 남편은 전형적인 효자다. 명절이면 연휴 시작되기 전날부터 귀성차에 시동을 건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K씨는 근무가 끝나자마자 보따리를 쌌다.

K씨는 어제 하루종일 전을 부쳤다. 금쪽같은 시누이들뿐 아니라 동네 홀로계신 할아버지, 목사님 드릴 전까지 완성하고 나면 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명절날 아침엔 오가는 손님들이 수차례 드나들어, 상을 차렸다 치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다들 한마디씩 하신다 “너네는 아직도 애가 없니?”
전 부치는 것보다 이 순간을 참는 일이 더 힘들다. 그런 질문은 예의가 아니라고 가르칠 수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 말할 수도 없다. ‘이런 명절을 얼마나 더 보내야 할까’ 생각해본다.

남편들도 편하지만은 않다
이 모든 여자들의 곁엔 남자들이 있다. 그들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아내 눈치 보느냐 송편이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는 차속 공기가 얼어붙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그까짓 명절, 그게 그렇게 힘들어?”라고 생각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까짓 명절, 그게 그렇게 힘드네요!”라고 대답할 사람들에게 위로 한마디씩 토닥여주시길.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명절’은 좀더 가까워질 것이다.

elena78@fnnews.com 김정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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