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카탈루냐 독립투표, 유혈사태로 막내려

      2017.10.02 07:02   수정 : 2017.10.02 07:02기사원문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투표가 결국 유혈사태로 막을 내렸다. 지방당국은 지역 주민 700여명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고, 경찰은 진압 과정에서 경찰 1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사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독립투표 이틀을 앞두고 9월 29일(이하 현지시간)부터 투표가 사실상 무산된 10월 1일까지 사흘간 스페인을 긴장으로 몰고 갔던 정치드라마는 그러나 이제부터 본격적인 탄력을 받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혈사태로 막 내린 독립투표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블룸버그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강경대응으로 돌아서면서 카탈루냐 독립투표는 대규모 유혈사태로 막을 내렸다.

카탈루냐 주도인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카탈루냐 지방 곳곳에서 폭동 진압 장비를 갖춘 경찰과 카탈루냐 시민들 간에 충돌이 벌어졌고, 경찰은 '고무총탄'을 시민들에게 쐈다.


카탈루냐 주정부는 경찰이 투표소에서 시민들을 끌어내는 등 강제 진압하면서 시민 760여명이 부상을 당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스페인 내무부는 경찰 1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카탈루냐 시민들은 스페인 중앙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독립투표를 치르기 위해 주말 저녁인 9월 29일부터 투표소 지키기에 돌입했다.

어린 자녀까지 동반한 시민들 수천에서 수만명이 이날 밤부터 최소 160여곳에 이르는 지정 투표소를 에워싸고 중앙정부가 투표소 봉쇄에 나설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은 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인 10월 1일 아침 투표소 소개 작전을 개시했다.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이 당초 투표하기로 했던 소도시인 상훌리아데라미스의 투표소에 폭동진압 장비를 갖춘 경찰 수십명이 들이닥쳐 시만 200명을 끌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카탈루냐 전역에서 투표소 강제 소개가 이뤄졌다.

경찰은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 지역의 투표소를 급습해 투표함을 빼앗고 투표소를 봉쇄했다.

보도에 따르면 라호이 총리는 최근 카탈루냐 지역에 경찰 수천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과잉진압, 궁지 몰린 라호이
그러나 스페인 경찰이 비무장 시민들을 구타하고, 투표소 계단에서 여성을 들어 던지는 등 과잉진압 장면이 사회관계망(SNS)을 타고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중계되면서 스페인 중앙정부는 되레 국제 여론전에서 수세에 몰리게 됐다.

지난 수년간 라호이 총리는 사태가 악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카탈루냐 독립 문제에 가급적 대응하지 않았지만 최근 독립 열기가 고조되자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강경대응으로 방향을 틀면서 자충수를 뒀다.

분석가들은 카탈루냐 독립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이번 과잉진압은 독립파가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런던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앤젤 탈라베라 애널리스트는 "이는 스페인 (중앙)정부에는 엄청난 홍보 재앙"이라면서 "경찰이 시민들을 구타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탈라베라는 "분리주의자들이 점점 더 많은 국제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할 것"이라면서 "그들은 이번 사태를 자신들이 억압적인 체제에 대항하고 있다는 증거로 들이밀 것"이라고 말했다.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당수를 비롯한 유럽 지도부 일부가 과잉진압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 벌써부터 비판적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빈 당수는 트위터를 통해 "카탈루냐 시민들을 향한 경찰의 폭력은 충격적"이라면서 "스페인 정부는 이를 지금 당장 끝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해리포터' 작가인 조앤 롤링도 1270만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폭력진압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세기에 걸친 갈등
WSJ에 따르면 카탈루냐와 스페인은 수세기에 걸쳐 갈등을 빚어왔다.

카탈루냐는 10세기 프랑크왕국의 카롤링 왕조로부터 독립해 자치권을 행사해왔다. 프랑크왕국에서 떨어져 나온 뒤 아라곤왕국에 흡수됐다가 1716년 아라곤이 스페인에 통합되면서 스페인으로 흡수됐다.

그러나 카탈루냐는 1714년까지 자체 정부, 의회, 사법체계를 유지했다.

카탈루냐의 불행은 1701~1714년의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줄을 잘못 서면서 시작됐다.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서 프랑스·스페인,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 사이에 왕위 승계권을 놓고 전쟁이 벌어지자 카탈루냐가 스페인 편에 선 것이다.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승리했고, 이후 카탈루냐 자치 기구들은 폐쇄되고 카탈루냐어도 억압받았다.

1931년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뒤에야 카탈루냐 자치권이 회복됐지만 갈등은 이어졌다.

그 해 카탈루냐가 독립공화국을 선포하자 마드리드 중앙정부가 카탈루냐에 대규모 자치권을 보장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3년 뒤 루이스 콤파니스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이 또 다시 독립 선포를 시도했다.

프랑코의 독재는 사태를 악화시켰다.

스페인 내전 뒤 정권을 잡고 40년 가까이 철권을 휘두른 프란치스코 프랑코는 콤파니스를 처형하고 카탈루냐를 억압했다.

1977년 카탈루냐가 다시 자치권을 인정받고, 이듬해 카탈루냐에는 상당한 자유를 보장하되 군이 국가 통합을 위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스페인 헌법이 통과되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평화는 유지됐다.
카탈루냐에서도 스페인 헌법은 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이같은 평화는 2006년 카탈루냐가 자치권 확대를 추구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깨졌다.


4년 뒤 스페인 법원은 카탈루냐가 새로 제정한 법률 상당분이 헌법위반이라고 판결했고, 이는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불을 댕겨 이날 독립투표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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