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패티가 빚은 황홀경' 햄버거의 진화

      2017.10.19 19:56   수정 : 2017.10.20 14:46기사원문
"저 여자가 먹는 걸로 주세요."

1989년 미국에서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명대사 중 하나다. 샐리(맥라이언)는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하는데도 일일이 재료의 상태를 거론하느라 '1시간'이 걸린다. 샐리와 그의 10년 지기 '남사친' 해리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여자의 가짜 오르가슴에 대해 논쟁하고, 샐리는 식당에서 페이크 오르가슴 연기를 선보인다.

식당 안 다른 손님들의 눈과 귀는 모두 샐리에게 집중 되고 그 연기를 인상 깊게 지켜본 아주머니 한 분이 말한다. "저 여자가 먹는 걸로 주세요."

19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샌드위치'와 '햄버거'는 전혀 다른 음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햄버거는 샌드위치의 일종이다. 햄버거의 정식 명칭은 '햄버거 샌드위치'. 햄버거가 들어간 샌드위치라는 뜻이다. 햄버거는 햄버거 스테이크(다진 소고기로 만든 햄버그 패티)를 뜻한다. 이번주 예스 플러스 맛은 '햄버거 맛의 변천사'를 돌아본다.


■햄버거 대중화 시대 연 롯데리아

우리나라에서 햄버거 대중화는 1979년 롯데리아 한국 1호점이 프랜차이즈로 문을 열면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맥도날드, 웬디스, 타코벨 등 외국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햄버거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한다. 이 시기를 전후에 태어난 '응팔(응답하라 1988)' 세대들의 기억 속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친구의 생일 파티를 했던 기억이 하나쯤은 들어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햄버거는 특별한 날, 가끔 먹는 외식 메뉴였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1990년대 국내 외식 시장 규모가 10조원을 돌파하며 햄버거에 대한 저변이 확대됐다"며 "이때부터 햄버거 국내 정착을 위한 한국 제품 개발이 본격화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토종 햄버거의 등장과 약진

롯데리아가 1992년 9월 국내 업계 최초로 출시한 불고기버거는 한국인 입맛에 맞춘 토종 햄버거의 조상격이다. 지난 25년간 누적 판매 수량 8억개를 기록하며 부동의 1위 제품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 불고기 양념액을 조미해 서구식 음식을 한국식으로 성공적으로 재창조 했다는 평가다. 특히 불고기 버거 출시를 기점으로 주 고객층이 어린이와 젊은층에서 전 연령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신토불이 버거의 대표격인 '라이스버거'는 빵 대신 쌀로 만든 번을 사용해 햄버거 업계의 틀을 낀 제품으로 평가 받는다. 1999년 출시한 라이스버거는 한 달 만에 약 80만개가 판매됐으며 이후 새우라이스버거, 김치라이스버거 등의 후속 제품 출시로 이어진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과거에는 햄버거가 패스트푸드 혹은

간식 개념이 컸지만 최근에는 '건강한 한끼 식사'를 충족하는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건강한 맛을 찾아라"

2000년 이후 광우병 파동, 트랜스지방산 등 반 패스트푸드 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햄버거 업체들은 건강한 맛 찾기에 주력한다.

롯데리아는 2004년 100% 국내산 한우를 사용해 만든 '한우 불고기 버거'를 출시했다. 롯데리아 측은 "출시 후 6개월만에 500만개의 판매고를 기록했다"며 "전국 한우협회 인증마크를 획득한 재료만 사용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업계 유일한 한우 햄버거"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식품 기업 중 하나인 맥도날드도 불고기 버거를 비롯해 한국 시장에 특화된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맥도날드 코리아 관계자는 "맥도날드가 진출한 120여개 나라의 입맛, 트렌드, 재료 등이 모두 달라 각 국가별로 메뉴가 다르다"며 "한국에서 개발된 메뉴가 해외로 수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이후 프리미엄.수제버거.차별화

2010년 이후로는 햄버거 시장이 성숙하면서 프리미엄과 수제버거를 앞세운 차별화 경쟁이 한창이다.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등 대표 프랜차이즈 외에도 중소형 프랜차이즈 혹은 지역의 맛집들도 경쟁에 가세하며 '저 여자가 먹는 버거'보다 '나만 먹는 버거'가 성장세다.

맥도날드는 2015년 합리적인 가격의 수제버거인 '시그니처 버거'를 프리미엄 버거로 출시했다. 일부 매장에서만 판매되던 이 제품은 출시 이후 매달 20% 이상의 성장을 하면서 현재는 모든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롯데리아는 고기 패티 대신 자연산 모짜렐라 치즈를 넣은 '모짜렐라 인 더 버거'를 2015년 출시했다. 피자를 먹는 것처럼 쭉쭉 늘어나는 치즈의 식감을 앞세워 매달 월평균 100만개 이상 팔려 나가고 있다. 또 지난해 출시한 AZ(아재) 버거는 다른 버거와 달리 주문 즉시 조리를 시작하는 수제버거 제조법을 사용해 차별화된 맛을 제공하고 있다.
치킨 패티를 주로 사용한 버거를 출시해 온 맘스터치는 최근 치즈 소스를 활용한 '딥치즈버거'를 선보였다. 통가슴살에 슬라이스 치즈 대신 크림치즈와 체다치즈를 넣어 깊은 치즈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올해는 세계 3대 프리미엄 쇠고기라 불리는 호주산 와규를 100% 사용한 와규 햄버거 2종을 출시했다"며 시대에 발맞춰 햄버거 역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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