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주는 불편함.. 오해와 편견으로 만든 수작(秀作) '조난자들'

      2017.11.18 06:51   수정 : 2017.11.18 06:51기사원문

과유불급,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낯선 사람이 과잉친절의 자새로 다가오면 경계심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영화 ‘조난자들’에서 학수가 그렇다.



영화는 인간관계만으로 상당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주인공 상진이 타인에게 느끼는 불편함을 통해 노영석 감독은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조난자들이 국내 스릴러 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이유다.

시나리오 작가 상진은 작품 마무리를 위해 외딴 시골의 펜션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추레한 학수와 의도치 않게 동행한다.
갓 출소했다는 학수는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해 좋다”며 상진을 억지로 붙잡고는 택시를 불러준다.

펜션에서 만난 사냥꾼들은 차량 트렁크에 피 묻은 연장을 가득 실었다. 무작정 펜션에 하룻밤 묶겠다고 요구하는 손님들은 사냥꾼들과 마찰을 일으킨다. 상진은 간신히 떼어놓은 학수와 펜션에서 재회한다. 초반부터 느껴지는 불편함은 영화 끝까지 감내해야 하는 몫이다.

한밤 중 손님이 시체로 발견되며 영화는 관객들에 “긴장하라”고 다그친다. 다른 손님과 상진 사이의 오해로 경찰이 출동하지만 정작 경찰은 학수의 친형이다.


사실 조난자들은 '클리셰(진부한 표현)'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딴 공간, 원치 않는 고립, 살인. 전형적인 서사지만 영화가 끝난 뒤 진이 빠질 만큼 극도의 긴장을 느끼도록 한다.

상진은 사라지는 손님들을 찾아 나선다. 영웅심리가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 탈출할 기회, 아니 탈출을 시도할 기회조차 사라진다.

누군가 사람을 죽였다는 행위만 확인됐을 뿐 여전히 범인은 오리무중. 상진과 관객들은 지금까지 학수, 사냥꾼들이 보인 모습만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다.

핵심은 편견과 오해다.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출소자, 피 묻은 연장을 차에 싣고 주인공을 위협하는 사냥꾼 등 관객들은 단편적인 모습에 편견을 갖게 된다. 이 편견은 오해가 돼 범인에 대한 억측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 가장 매력 있는 캐릭터는 학수다. 그는 클리셰 속에서 클리셰를 파괴한다.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경찰, 경찰인 형이 상진을 죽이려 들 때 학수가 이를 말린다. 상진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던 인물이 도리어 그를 구하는 은인이다.


정작 살인범은 예상치 못한 인물이다. 이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이다. 다만 반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관객들은 “너무 뜬금없다”거나 “충분히 개연성 있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관객에게 긴장감을 준다’는 스릴러의 특성을 감안하면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영화 속 핵심은 "주변 사람들 속에 범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범인을 확신할 수 없는 불안, 의심, 긴장이다.


조난자들을 끝까지 본 뒤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 거다. 감독은 관객이 마지막짜기 찝찝함을 느끼도록 이야기를 안배했다.
마지막 반전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느낄 법한 불편함이 나에게 실질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다는 공포감 말이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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