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로스쿨 입시에도 점수 요구…시험중심 문화의 폐해

      2017.12.13 17:46   수정 : 2017.12.13 17:46기사원문

"토익(TOEIC)은 주로 우리나라, 일본에서 봐요. 그러나 취업을 위해서라면 일단 열심히 해야겠지요."

학원이나 학교에서 토익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말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토익 강사들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토익은 정확히 토익 리스닝 & 리딩 테스트로, 시험을 출제하는 미국교육평가원(ET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이 시험을 본 사람은 519만명이다.

일본 토익 주관사 국제비즈니스커뮤니케이션협회(IIBC)는 지난해 250만명이 일본에서 토익을 봤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200만명가량이 응시했다고 가정하면 전 세계 토익 응시자의 80% 이상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있는 것이다.




■한국, 인구 대비 응시자 1위

토익은 일본의 의뢰로 미국 ETS가 개발한 시험인 만큼 실제로는 일본이 토익 종주국이다. 일반적으로 토익 종주국인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토익을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잘못된 정보다. 우리나라 토익 주관사인 YBM 한국토익위원회는 2013년(207만명) 이후로 국내 토익 응시자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일본 IIBC 자료를 보면 일본 토익 응시자는 2012년 이미 230만명을 넘어서기 시작해 2016년 250만명까지 증가한 상태다.

그러나 인구를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토익에 전력투구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일본 인구는 1억2700만명에 이르는 반면 우리나라 인구는 5100만명인데도 토익을 보는 사람이 200만명가량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학령인구(만 6~21세) 감소로 응시자수가 다소 줄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여전히 인구 대비 많은 사람이 토익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토익의 쓰임새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에 필요한 것은 물론, 내년부터는 공무원 7급 공채 영어시험이 토익 성적 제출로 대체된다. 인사혁신처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생활안전분야 추가채용 제외) 영어 성적 제출현황에 따르면 토익 성적을 제출한 응시자가 전체 영어 성적을 낸 응시자(2만4437명)의 91.2%인 2만228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급 공무원시험 응시자 10명 중 9명은 토익 성적을 제출한 셈이다.

7급 준비생들이 실제 토익에 응시한 횟수는 토익 성적 응시인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700점 이상의 지원자격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번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시험 중심 한국 문화에 정착"

그렇다면 토익이 한국, 일본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ETS에 따르면 토익은 전세계 150개국 1만4000여개의 기업 및 기관에서 채용, 인사고과, 임직원 영어능력 개발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딜로이트, 지멘스, 페덱스 등 세계적 기업에서 토익을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례적으로 프랑스 해군에서 장병들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 2006년부터 토익을 도입하고 있다. 프랑스 해군에서는 매년 2500여명을 대상으로 120회가량 토익을 시행한다고 한다. 공병학교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최저 점수는 785점,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군사학교에서도 입학조건으로 785점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사회 곳곳에서 토익 점수를 요구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TS가 발표한 2016년 전세계 토익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토익 평균 점수는 679점으로, 일본(516점)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에 일본은 영어교육 강화 차원에서 2020년부터 대학입학시험 영어 과목을 토익 성적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1982년 국내에 첫 도입된 토익은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선발 영어시험을 치르는 대신 토익점수를 받기로 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대학들은 토익 점수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외국어 특별전형을 마련했고 특수 목적고 입시에도 사용되면서 토익 시장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는 "기업들이 업무 내용이나 역량에 대해 별 고민도 없이 행정편의상 토익 점수를 제출토록 하면서 하나의 사회적 관행이 됐다"며 "토익 800점과 900점 받은 직원의 업무 역량에 그리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영어 능력을 강조하더라도 이렇게 토익 성적으로 어떤 자격을 부여하거나 대학교 졸업인증을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지난 20여년간 세계화를 급박하게 강조하면서 시험 중심 문화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토익이라는 시험이 사회적 논의나 비판 없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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