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뒤엔 뭘 먹고사나
2017.12.19 16:59
수정 : 2017.12.19 16:59기사원문
올해 산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반도체 착시다. 대다수 산업이 고전하는데도 반도체 호황 때문에 위기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 착시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처음 나타났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업계는 30년 치킨게임을 거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빅3' 체제로 재편된 상태다. 과거와 같은 D램값 급락은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분석도 힘을 싣는다.
문제는 반도체 이후의 미래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그나마 두 번의 위기를 버틴 것은 제조업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 가전 등의 세계 점유율이 2025년 곤두박질칠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혁신성장은 말뿐이다. 규제를 풀어 투자를 늘릴 생각은 않고, 낡은 레코드 틀 듯이 세금 쓰는 정책만 쏟아낸다.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2013년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며 경고장을 날렸다. 문재인정부 들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에는 손을 놓고 미래 먹거리엔 규제의 칼날을 들이댄다. 4년 만에 같은 경고가 나왔다. 이번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KDI는 지난달 "한국 경제는 뜨거운 냄비 속 개구리다. 5년 내 냄비에서 뛰쳐나가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구인난에 시달린다. 우리보다 13배나 큰 미국 경제가 3.4분기 3% 넘게 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 경제의 힘을 노동시장의 유연성, 파괴적인 혁신과 활발한 인수합병(M&A), 경쟁 활성화에서 찾는다. 그런데도 미국은 법인세를 대폭 낮추고 규제를 푸는 등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뒤진 제조업에서 벗어나 4차산업에 올인한다. 이를 위해 샌드박스제 도입 등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 핀란드 법인세의 20%를 차지했던 공룡기업 노키아의 몰락은 반면교사다. 노키아가 2013년 휴대폰 사업을 접을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븐 엘롭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망했다"고 말했다. 노키아가 정점에 오른 2007년 바로 그해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 '아이폰'을 세상에 내놨다. 노키아는 성공에 취해 변화를 읽지 못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mskang@fnnews.com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