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도로 흡연부스는 왜 '섬(島)'이 되었나?

      2017.12.25 11:10   수정 : 2017.12.25 11:10기사원문

#서울역 1번 출구 흡연부스는 항상 흡연자와 담배연기로 가득하다. 이 때문에 부스 밖에서 흡연하는 이들이 늘자 아예 가드레일이 설치됐다. “여기까지는 흡연할 수 있다”는 모양새다.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던 A씨는 “부스는 개방형이지만 연기가 빠지지 않아 옷에 냄새가 밴다”며 “환풍기라도 달면 좀 낫지 않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흡연자들이 흡연부스를 외면하고 있다. 비좁고 환기가 안 돼 무용지물일 뿐 아니라 서울시도 개선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서울인구수는 약 1020만명, 흡연율은 19.5%다. 이로 볼 때 서울 흡연인구는 약 200만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시내 흡연부스는 총 40여개 가량으로 이들을 수용하기 턱없이 부족하다.

■환기시설 부족한 흡연부스.. “흡연자 수용소냐” 불만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있는 흡연부스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작 부스를 찾는 흡연자들을 되레 밖으로 내모는 것이다. 지난 22일 실제 기자가 서울 내 몇몇 흡연부스를 찾았을 때 내부는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가득하고 바닥 곳곳엔 침이 떨어져 있었다.

환풍기가 아예 설치돼 있지 않거나 있어도 환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흡연자들이 흡연부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담배 연기’를 꼽는 걸 고려할 때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근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흡연자들은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다. 을지로입구역 8번 출구 흡연부스는 지하철역 입구와 횡단보도 사이에 설치됐다. 이들 10m 이내는 금연구역이다. 담배를 피우며 부스 밖을 한발자국이라도 나서면 원칙상 과태료 부과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부스가 ‘흡연 섬’이 된 셈이다. 하지만 적잖은 이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동서울터미널 근처 흡연부스엔 아예 ‘흡연부스 밖 흡연은 과태료 부과대상’이란 경고문이 부착됐다. 하지만 바깥에서 흡연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흡연자들은 “환기도 안 되는 비좁은 부스에 마치 수용소처럼 흡연자들을 몰아넣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흡연부스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직장인 B씨는 “크기를 넓힐 수 없다면 부스 내에 제대로 된 환풍기라도 달아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담배를 팔면서 금연구역은 늘리고, 흡연부스는 열악한데 대체 어디서 담배를 피우란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행인들이 감수해야 한다. 을지로입구역 흡연부스 옆 횡단보도에 서 있던 C씨는 “흡연부스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니 원치 않게 간접흡연을 하게 된다”며 “멀찍이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바람이 이쪽으로 불 땐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관련 규정이 마땅찮다. 서울시 시민건강국에서 마련한 가이드라인에서 ‘필요시 별도로 환기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전부다. 이밖에도 ‘폐쇄형 흡연시설물 설치 불가’가 명시됐지만 부스 1/3이 폐쇄형·완전폐쇄형으로 설치됐다.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권고에 그치는 수준이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 야외흡연실 설치.. “시(市)가 나서야 한다” 목소리
이런 이유로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지만 서울시는 흡연부스 추가설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 역시 흡연권 보장이란 취지에 공감, 간접흡연을 막으려 올해 부스 설치 예산을 책정했지만 시민들의 반발과 민원으로 보류됐다”며 “내년에 시 차원에서 흡연부스를 직접 설치·개선하거나 자치구를 지원할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또 “일단 자치구의 부스 설치를 위한 가이드라인은 제시했는데, 앞으로의 대책마련은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자치구도 흡연부스를 확보하는 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대문구는 서울시 공모사업을 통해 청량리역에 흡연부스를 설치하려했다. 하지만 근처 땅 주인과 역사(驛舍) 간 협의에 실패해 사업이 사실상 취소됐다.


심지어 기존 건대입구역 흡연부스는 아예 철거됐다. ‘지하철역 입구 10m 이내 금연구역’이란 조례와 민원 때문이다. 결국 인근 야외공연장이 공공흡연장으로 전락했지만 광진구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광진구청 관계자는 “이전할 부지를 찾지 못해 흡연부스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며 “민원뿐 아니라 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사실상 철거한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은 흡연부스 확보에 적극적이다. 2003년부터 분연정책을 실시한 일본은 2011년 기준 전국 900개 이상의 흡연부스를 확보했다. 특히 지난 8월 후생노동성은 야외 공공흡연실을 설치하는 도시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밖에도 55만엔(약 500억원) 가량의 예산을 들여 흡연실을 설치하는 음식점을 지원하는 등 분연정책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서울시가 직접 나서 흡연부스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흡연자 단체 관계자는 “시의 지원이 없는데 어떻게 자치구에서 의지를 갖고 흡연부스를 설치하겠느냐”며 “시가 흡연부스를 직접 만들거나, 설치비 지원 혹은 설치 후 자치구에 관리를 위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일본이 흡연부스를 확보하는 건 흡연권 확보뿐 아니라 간접흡연을 막는다는 방침 때문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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