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리얼충' 대행서비스
2017.12.21 17:18
수정 : 2017.12.21 17:18기사원문
한국에서는 생소하기만 한 단어다. '리얼충'이란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온라인 관계가 아닌 실제 사회에서 인간관계나 취미활동을 즐기는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속어다. 반면 '리얼충 대행서비스'란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처럼 꾸며주는 대행서비스다.
일본의 리얼충 대행서비스는 한발 더 진화하고 있다. 애인이나 친구, 가족까지 대행해준다. '아버지.어머니 대행'과 '자식(아이) 대행'을 이용하면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족도 바로 만들어낼 수 있다. 최근에는 누군가에게 된통 야단을 맞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꾸지람 대행', 누군가에게 대신 사과해 주는 '사과 대행', SNS 속 인기인처럼 보일 수 있는 'SNS 대행' 등 정말 대행해줄 수 있는 건 뭐든 다 대행해 주는 모습이다. 이 모든 서비스는 시간당 약 8000~1만5000엔(약 7만6000원~14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일본에서 '리얼충 대행서비스'가 확산되는 이유는 '나홀로족'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10년 전인 2007년 '혼밥'을 즐기는 직장인이 전체의 30%를 차지했을 정도니 말이다. 타인과 섞이기보다 혼자 자유를 느끼는 것이 더 좋다고 느끼는 나홀로족은 이미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사회현상이 됐다.
일본 직장에서는 사내 회식문화도 사라져가고 있다. 시티즌시계(도쿄)가 지난 4일 1년차 사회인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일본의 신입사원의 41.5%가 '상사와 회식이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결국 리얼충 대행서비스는 사회관계를 쌓는 데 어색해하는 일본의 나홀로족을 위해 생겨난 서비스다. 혼자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자신이 현실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다. '나홀로족'은 자칫 잘못하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점차 이들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일본 전국 지자체 절반가량이 이들의 취업지원을 포기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사회에 복귀하기를 원하지 않아 지자체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리얼충 대행서비스'는 이런 일본의 사회적 현상에서 자연스레 태어난 이색 서비스다.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알 수 없다. 한국도 최근 나홀로족 문화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1코노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1인가구도 늘고 있다. 한국의 1인가구들도 머지않아 리얼충 대행서비스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sijeo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