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의 민낯’...낭만일까 공해일까

      2018.01.25 11:30   수정 : 2018.01.25 11:30기사원문

# 지난해 11월 홍대 앞에서 댄스 공연을 하던 남성이 구경하던 여성의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며 춤을 추는 영상이 공개됐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홍대 머리채 남’으로 공유되며 180만 조회 수와 댓글도 3,500개 이상 달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관련 댓글을 살펴보면 “본인 스스로 아주 멋진 줄 알고 하는 행동 같다”, “관객과 소통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명백한 폭행인데 퍼포먼스라고?”, “생각이 없어 보이고 한심하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졌다.



2000년대 후반 홍대 앞·신촌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된 버스킹(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것)이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민폐 문화로 전락하고 있다. 너도나도 재능을 뽐내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거리는 그들의 연습 공간으로 변질됐다.
퍼포먼스라는 명목으로 핸드폰을 뺏고,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등 도 넘는 수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욕설을 퍼붓고 소음 피해와 쓰레기까지 판치는 그들의 행동 때문에 버스킹의 낭만은 점점 잊혀가고 있다.

■안전장치 없고 통행 불편.. 소음 전쟁에 수준 이하 공연들도 많아
늦은 저녁 홍대·신촌 등은 버스커들이 불과 3~5m 안 되는 간격을 두고 공연을 하면서 길거리가 포화상태다. 서로 경쟁하듯 스피커 볼륨을 키우고 똑같은 노래를 불러 소리가 섞인다. 이런 현상은 자정이 넘어서도 계속된다. 소음 때문에 대화가 힘들고 전화통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버스커들과 상인들이 말다툼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3년 10건에 불과했던 버스킹 관련 민원 신고는 지난해 1∼8월까지 77건으로 집계됐다. 민원 신고는 매년 70% 이상 늘었고 마포구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길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공연하기 때문에 안전장치도 없어 통행도 불편하다. 홍대에 거주하는 정모(34)씨는 “공연이 너무 많아 집으로 귀가할 때마다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며 “통행이 힘들어 길을 돌아서 가거나 사람들에 밀려 다칠 뻔한 경험도 있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실력 없는 팀들이 주목받고 싶어 공연하는 것도 문제다. 어색한 군무와 부족한 가창력, 억지로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은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보다 더 못하다. 관객에게 욕설, 성추행 등의 민폐를 끼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행동도 위험한 수준이다. 뒤처리도 깔끔하지 않아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서울은 각 구청이 자체적으로 버스킹 관리.. 불법 제재할 법적 근거 없어
길거리 버스킹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소음이다. 그러나 버스킹을 규제할 법적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은 각 구청이 자체적으로 거리 공연을 관리하고 있는데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에서 공연을 자제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전부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행법상 공연 소음에 대한 형사상 처벌 규정이 없고, 자치단체 조례에도 시간·장소 등 기준 제한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는 마포구가 유일하게 버스킹 사전 신고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부터 매일 오전 9시~오후 10시까지 시간제한을 두고 지정된 장소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 사행성 도박·이벤트성 경품 제공·이용 시간 초과 등을 위반하면 3개월 동안 이용이 제한된다. 그러나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소음, 뒤처리 등이 잘 지켜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포구청 문화진흥과 관계자는 “버스킹 사전 신고제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정된 장소 외에도 비어 있는 공간을 오는 순서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특히 주말에 경쟁적으로 공연을 하는데 소음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도 강제 해산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부산도 주민들과 투숙객들의 민원이 폭주해서 버스킹 사전 예약제를 시행한다. 부산 중구는 지난해 6월 차 없는 거리에서 생활 소음 규제 기준인 60dB 초과하면 과태료를 부과했다. 전화벨 소리가 70db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거리 공연 자체를 금지한 것이다. 이외에도 서구의 송도해수욕장도 비슷한 시기에 버스킹이 금지됐다.

■ 해외는 공연가들 심사하고 기준 통과해야 허가증 발급

대표적으로 영국은 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기준을 통과해야 허가증을 발급한다. 허가증 없이 길거리 공연하는 것을 불법 행위로 간주한다. 대표적으로 버밍엄에서는 주변 상권과 거주자를 고려하고 저녁 8시~ 아침 9시까지의 스피커 사용은 시가 승인을 해줘야 공연을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안전과 이동에 우려할 상황이 생기면 중지하거나 연기를 하고, 징, 북, 등 시끄러울 수 있는 악기를 사용할 때는 휴식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단순 반복은 소음으로 간주하고, 공연의 단조로움도 피해야 한다.

관람객에도 가이드라인 제시했다. 버스커에게 불만이나 사건·사고가 있을 때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 버스커에게 용건을 설명한다. 버스커는 스피커의 볼륨을 줄이거나 공연의 장소와 방향을 바꾸는 등 관객의 어떤 요구에도 합리적인 조정을 해야 한다.

타협이나 중재가 힘든 경우에는 시 공무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 중재를 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부정적 상황이 계속 발생되면 해당 버스커에게 정식 경고장을 발송하고, 최후에는 벌금을 부과하고 물품을 압수한다.

호주는 공연자에게 허가증을 발급하고 한 블록에 한 팀만 공연할 수 있다. 장소를 두고 공연자들 사이의 분란을 막고 소음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공연 전 반드시 지자체에 사전 등록을 해야 한다. 미국도 앰프 등 음향 장비를 사용할 때 경찰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일반적으로 밤 9시 이후에는 공연이 금지된다.

예술은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만큼 타인의 행복도 소중하다는 것 알아야 한다. 지자체에서 버스킹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이다.
버스커들은 동업자 정신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관객에 대한 매너도 지켜야 한다. 장난과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무례한 행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때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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