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싸움은 없었다…南北 나란히 속담·선물 언급하며 '화기애애'
2018.01.09 15:02
수정 : 2018.01.09 15:23기사원문
【판문점=공동취재단 김은희 기자】"여기 이렇게 보따리가 많아요."
무려 2년여 만에 열린 남북회담 현장으로 향하기 직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자신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회담장인 평화의 집에서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놨고 북측 대표단도 화답하듯 '고위급대표단·응원단 등의 평창 동계올림픽 파견'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내놨다.
우려했던 기싸움은 없었다.
회담장을 채웠던 긴장감을 깬 건 북측 대표단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내려오면서 조 장관에게 뭘 말할까 생각했다"던 리 위원장은 조카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리 위원장은 "2000년 6월 출생한 조카가 벌써 대학에 간다고 했다"면서 "벌써 18년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두 번이나 지났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느냐"고 말했다. 2000년은 남북이 첫 정상회담을 열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한 때다. 그러면서 "뒤돌아보면 6·15 시대, 그 모든 것이 다 귀중하고 그리운 것이었고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를 언급하며 대화에 대한 의지가 드러낸 것이다.
조 장관이 학창시절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한 일화도 리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다. 그는 "동심은 순결하고 깨끗하고 불결한 게 없다"면서 "그때 그 마음을 되살린다면 회담이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조 장관을 비롯한 우리 측 대표단은 리 위원장의 이같은 덕담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조 장관과 리 위원장이 속담과 격언, '선물'을 나란히 언급하며 서로 보조를 맞췄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먼저 조 장관이 속담 '시작이 반이다', '첫 숟갈에 배부르랴'를 인용하며 이번 회담이 갖는 의미를 강조하자 리 위원장은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길이 더 오래간다', '마음 가는 곳에 몸도 가기 마련'이라는 격언으로 발을 맞췄다.
또 리 위원장이 "온 겨레에게 새해 첫 선물, 값비싼 결과물을 드리는 것이 어떤가 한다"고 강조하자 조 장관은 "첫 남북회담에서 좋은 선물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회담에선 리 위원장의 호탕한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즉석에서 회담 전체를 공개하자는 돌발 제안을 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리 위원장은 "회담을 지켜보는 내외의 이목이 강렬하고 기대도 큰 만큼 우리 측에서는 전체공개를 해 실황이 온 민족에게 전달되면 어떤가 하는 그런 견해"라며 "확 드러내놓고 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이에 조 장관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면서도 "모처럼 만나 할 얘기가 많은 만큼 관례대로 비공개로 진행하고 필요하다면 공개하자"고 했고, 리 위원장도 동의했다.
또 리 위원장은 모두발언이 끝난 뒤 취재진이 수석대표 간의 악수를 다시 요청하자 "기자 선생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