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눈빛에 수호랑 인형까지…치열했던 '질문권' 전쟁
2018.01.10 15:54
수정 : 2018.01.10 15:54기사원문
"'나도 눈 맞췄다'며 일방적으로 일어나면 곤란합니다."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경고'했다. 기자들은 일제히 웃었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은 미국 백악관 식으로 진행됐다. 사전에 질문을 조율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질문자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방식이었다.
낯선 기자회견 방식에 긴장한 건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자유롭게 질문자를 선택했고 여유롭게 질문에 답했다. 긴장은 되레 질문권을 얻으려는 기자들이 했다.
"기자 여러분, 손들어 주십시오." 윤 수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 명의 기자들은 일제히 손을 번쩍 들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이 끝나도 손을 든 취재진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늘었다.
200여명의 기자가 사방에서 손을 들고 강렬한 눈빛을 보내자 문 대통령은 질문자를 지목할 때마다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자들은 문 대통령과 눈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두 손을 모두 들기도 했고 수첩을 흔들기도 했으며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사람도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해 지목도 당하기 전에 먼저 일어난 기자도 있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에도 승자는 있었다. 강원지역 일간지 기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인형을 들고와 문 대통령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 여성기자는 보라색 코트를 입고와 질문권을 얻은 뒤 "보라색 옷을 입고 나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또다른 기자는 문 대통령의 손짓에 벌떡 일어나 "저랑 눈 마주친 것 맞죠"라며 질문했으나 옆자리 기자의 기회였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옆자리 기자에게 다시 질문기회를 주며 "제가 그렇게 지목하려고 했는데 먼저 일어나셔서"라며 웃어보였다.
이날 회견에선 문 대통령 기사에 달리는 지지자의 댓글을 두고 오간 문답도 눈길을 끌었다. 한 기자는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격한 표현과 함께 안좋은 댓글이 달린다"며 "지지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언론인은 활발하게 댓글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모르겠으나 정치하는 사람은 언론의 비판뿐 아니라 문자와 댓글을 통해서 많은 공격을 받아왔다"면서 "저와 생각이 같든 다르든 국민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인다. 기자들도 담담하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행운의 17번째 질문권을 얻은 기자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수시 브리핑'을 주문하자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방법 가운데 언론과 소통하는 것이 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언론과의 접촉을 더 늘려나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날 회견장에선 회견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동률의 '출발', 윤도현의 '길', 제이레빗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대중가요 3곡이 흘러나왔다. 지난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 긴장을 풀자는 차원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새해를 여는 기자회견인 만큼 새출발의 의미를 담은 음악을 선곡했다"고 귀띔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