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우로 이끌어준 '모래시계' 다시 만난건 운명이죠

      2018.01.18 20:16   수정 : 2018.01.18 20:16기사원문

20여년 전 전국민의 퇴근길을 재촉하던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도 회자되는 SBS '모래시계'가 바로 그 작품이다. TV에 방영됐던 1995년 '귀가 시계'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당시 최고시청률(64.5%)을 기록한 국민 드라마가 뮤지컬로 다시 돌아왔다.

오는 2월 11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침체돼 있던 창작뮤지컬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1970~80년대 격동기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태수와 혜린, 우석의 우정과 사랑, 엇갈린 운명과 선택을 그린 이 작품은 방대한 24부작 드라마를 2시간40분 길이의 뮤지컬로 압축하면서 세 주인공에 더욱 포커스가 맞춰졌다.
이 가운데 태수는 부조리한 시대의 풍파를 온 몸으로 맞는 캐릭터로 뮤지컬 '모래시계'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이자 시대상을 대변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이번 공연에서 태수 역을 맡은 김우형을 17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드라마가 방영됐던 시기에 작품을 다 봤나.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될 때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본방을 사수했다. 나이 들어서도 이 드라마는 여가시간 틈틈이 돌려보는 작품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드라마를 봤다면 이렇게까지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거다. 사춘기 시절 그 드라마가 준 강렬한 인상과 감정이 깊게 남아 삶의 방향에 영향을 줬다. 그때 나는 분노와 열정이 동시에 끓어올랐다. 하고싶은 것은 많은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시절이었고 태수가 내게 우상이 됐다. 물론 태수는 극에서 건달이고 거친 삶을 사는 남성의 아이콘인데 오히려 그 인물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찾게 됐다.

―뮤지컬 '모래시계'가 창작 초연이지만 과거 드라마로 인기가 높았던 작품이어서 나름의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뮤지컬에 캐스팅되고 나서 그렇게 여러번 돌려봤던 드라마 '모래시계'를 오히려 보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기대치가 있을거라고도 생각했다. 이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태수'라고 보기보단 '최민수' 역할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캐릭터보다 '박상원' 역할, '고현정' 역할이구나 생각할 것 같았다. 하지만 보지 않은 세대도 절반 정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욱 최민수 선배를 따라하지 말자가 목표였다. 내 안의 남성성과 감성을 끄집어내서 표현하자는 생각뿐이었다. 무작정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장르가 다르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김우형의 '태수'를 대중들이 납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태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태수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선택이 다양하고 좀 더 따뜻했다면, 그리고 사회가 태수를 밀어내지 않았다면 어쩌면 태수는 건달이 아니라 훌륭한 검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이라기 보다 현실에 밀려 좇기고 버티며 살다보니 어느 순간 어둠의 세계에 발을 담근 남자였다. 그렇지만 열정과 순수는 컸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릎꿇고 열정을 바칠 수 있고 친구 우석에게 사형을 받을 용기도 있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딨겠나. 안에는 순수하고 소년 같은 내면이 있던 사람인 것 같다. 근데 그걸 세상이 바꿔버렸다.

―드라마에 비해 멜로 라인이 강조됐다.

▲방대한 드라마를 압축해 공연하다보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을 것이다. 처음 워크숍을 통해 대본 리딩을 하고 연습 과정 속에서도 치열했고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다. 오히려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게 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개인적으론 '모래시계'를 모르는 젊은이들과 나이드신 분들 모두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소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과 우정은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감정이니 세 인물의 우정과 사랑 멜로로 잡자 해서 그들이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는 방법과 사랑을 지키기 위한 치열함을 보여주고 그 가운데서 시대상을 표현하자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캐스팅이 되고 첫 공연 무대 오르기 전날까지도 대본이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이 창작 뮤지컬의 묘미다.

―자신의 성격과 태수의 성격 중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태수의 노래 중 '너에게 건다'라는 곡에 '까닭모를 내안의 분노와 열정. 분노도 있고 열정도 있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정서가 비슷한 것 같다. 남성성이 강한 스타일이어서 그런 부분들이 비슷한 것 같다. 다른 점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하.

―2006년부터 10년 넘게 뮤지컬 배우로서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다른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처음에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2004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초연을 보고 빠져들었다. 꿈을 품은지 2년 만에 무대 올랐고 눈 돌릴 틈없이 쉬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나는 장기적인 꿈을 꾸기 보다는 단기 목표를 세워서 조금씩 실천해가는 스타일이다. 뮤지컬을 하면서도 운이 좋게 좋은 작품의 오디션에 통과하고 무대에 서고 무대를 알아가고 다음을 향해 하나씩 이루며 온 것 같다.

―작품 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작품인가가 중요하다. 여기서 '모두'는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까지 전부 포함한다. 관객이 좋아해도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작품은 안하고 싶다. 모두가 작품 안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는데 전율이 오른다.
근데 이런 작품을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잘 소화할 수 있고 다양한 색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연출가가 디렉션을 줬을 때 쓸 수 있는 연기의 색깔이 다양할 수 있게 그려주고 보여주고 소통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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