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항공사 개별문의 못하게 서약서 받아

      2018.02.04 18:57   수정 : 2018.02.04 19:20기사원문
채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항공사 직원은 어떤 사람들인지 본적도 없다. 그러나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업체 말만 믿고 합격소식을 간절히 기다렸다.

돌아온 것은 '최종합격' 대신 '해당 채용은 허위'라는 소식. 최근 빚어진 '모로코항공 허위채용' 논란은 승무원이라는 꿈에 가린 외항사 취업의 그늘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는 평가다. 파이낸셜뉴스는 승무원 준비생들이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실태를 2회에 걸쳐 진단한다.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지 않은 외항사들은 국내 승무원학원과 계약을 맺고 채용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쿠웨이트항공, 필리핀항공 등도 국내 학원을 통해 한국인 객실승무원을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학원 채용대행체계의 허점을 이용하는 일부 업체들 때문에 승무원 준비생들이 상처를 입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모로코항공 관련 내용이 알려진 후 '어떻게 속을 수 있느냐'는 등 의문이 제기됐으나 당시 피해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항공사에 물어보면 알 수 있잖아"..실제는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모로코항공 채용공고를 낸 한 업체는 지난해 9월 학원생들에게 "채용 예정 항공사에 본원을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채용 관련 의견을 제기함으로써 다른 합격자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 경우 배상책임을 질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에 서명하도록 했다. 이후 최종면접 3차례 연기 등 이상 조짐이 보여도 학원생들은 항공사에 항의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학원생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해당 내용에 서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과거 학원생들이 학원을 통하지 않고 항공사에 연락했다가 채용이 취소됐다는 말을 들어서다.

지난해 4월 한 외국항공사 채용대행을 맡은 국내 A승무원학원은 "학원등록생을 우선순위로 면접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취지로 학원생을 모집했다. 학원에 등록했다가 정작 면접에서 떨어진 일부 학원생은 불공정한 채용과정 관련 문의메일을 해당 항공사에 보냈다. 이후 항공사측이 '채용절차가 공정하지 않아 채용 자체를 취소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일부 학원생들은 "실제 예정된 채용이라면 이렇게 쉽게 취소할 리 없다"며 학원이 없던 채용을 만들어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해당 학원은 "항공사측과 지속적으로 협의중"이라고 학원생들에게 해명한 상태다.

승무원 준비생 강모씨(30·여)는 "이런 서약서가 있었다는 말에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면서도 "채용취소 사례가 있었으니 나였어도 어쩔 수 없이 서명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 "자질 부족자 합격은 어불성설"
외항사 승무원 채용시장에서는 학원 채용대행 체계가 '믿거나 말거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 지사가 없는 외국항공사로서는 한국에 직접 와 채용을 진행하기 쉽지 않고 지원자 역시 면접을 위해 해외로 나가기가 어려워 학원 채용대행이 사실상 관행으로 굳었다는 설명이다.

2년간 승무원 준비를 했다는 이모씨(29·여)는 지난해 현지 공채를 위해 일본, 대만 등 3개 국가에 다녀왔다. 많은 시간과 돈을 소요했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결국 승무원학원에 재등록한 이씨는 "현지에서 진행하는 공채에 참여하면 회사 직원들을 직접 보는 등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서도 "해외에 나가 쓰는 비용이 국내 학원에 등록, 면접보는 비용과 비슷하기 때문에 학원 채용대행을 선호하는 지인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용대행 과정에서 학원 강사나 원장 등 면접관이 1차 면접을 진행하면서 불만도 나온다.
전직 외항사 승무원 황모씨(27.여)는 "합격율을 높이기 위해 학원에 등록한 학생을 합격시켜준다는 말이 있어 공정성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면접과 상관없는 내용이나 아주 기초적인 내용을 비싼 돈 받고 가르쳐 불만도 많다"고 밝혔다.

학원들은 채용절차를 공정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서울지역 B승무원학원 관계자는 "자질이 부족한 지원자를 학원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접 통과시켰다가는 전체적인 합격자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이후 항공사와 재계약이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라고 말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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