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프면 청춘 아닌 ‘환자’..경쟁, 열등감에 무방비

      2018.02.07 16:00   수정 : 2018.02.07 16:20기사원문


정신질환을 앓는 청춘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다른 세대에 비해 20대 우울증 환자 증가가 뚜렷하다. 2012년 대비 2016년 20대 우울증 환자가 22% 증가했고 80세 이상을 제외한 연령대에서 가장 큰 증가폭이라는 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질병, 유전보다는 사회환경이 우울증에 더 밀접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20대가 취업, 가치관 등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좌절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울증 치료시기를 놓치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청년 우울에 대해 ‘의지박약’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증가하는 20대 우울증의 실태와 개선 방안 등을 짚어본다.

■"내 인생 0점이구나" 고통
올해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한 박소연씨(가명·25·여)는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째 우울증치료를 받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못자는 등 불면증을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았다. 매일 2차례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먹는다. 박씨는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며 “상담치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17만원”이라고 전했다.

박씨의 우울증은 대학 때 시작됐다. 사회에서 20대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압박처럼 다가왔다. 그는 “대학을 다니며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야박해졌다”면서 “취업을 위한 고학점, 대외활동은 기본이고 배낭여행도 무조건 가야 하는 것처럼 강요당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졸업할 때가 되니 남들보다 허투루 살았구나, 내 인생은 0점이구나라는 열등감이 괴로웠다”고 울먹였다.

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우울증 현황에 따르면 2012년 대비 2016년의 10대, 40대, 50대 질환자는 줄었다. 반면 30대는 1.6% 소폭 늘었고 특히 20대는 22% 급증했다.


■‘남과 비교’하는 사회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20대 우울증 원인으로 ‘남과 비교하는 사회’를 꼽는다. 우울증은 소득수준 같은 객관적 수치보다 ‘상대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지위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남과 비교해 열등하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분위기가 높은 수준의 경제·사회 지위를 추구하면 경쟁적으로 타인과 비교의식이 생기고 우울증과 연결된다고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홍진표 소장은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한국 사회 문제로 △경쟁사회 △체면문화를 꼽았다. 홍 소장은 “산업화과정에서 경쟁시스템이 도입되고 ‘싸워 이기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이에 더해 좋은 학벌, 직장을 중시하는 체면문화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로 나를 결정하는 비교문화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20대가 비교문화에 더 노출되는 이유 중 하나로 SNS를 들었다. 그는 “주변 사람과 사생활이 공유되는 세대”라며 “원래 갖고 있던 체면, 현실적 성공이 바로 직접 비교되는 상황이어서 남들에 비친 나의 모습에 민감해지고 이런 비교가 우울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학생 환자 급증, 방학예약 만원"
20대 우울의 원인인 ‘남과 비교하는 사회’에는 경제적 배경이 있다. 최근 20여년간 IMF금융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실직자가 급격히 불어났고 가계 양극화 역시 심화됐다. 지난해 청년 체감실업률은 22.7%로, 2016년(22.0%)에 비해 올랐다. 실업자만 105만3000명으로, 사실상 청년 인구 10명당 2명이 실업자인 셈이다. 취업이 어려우니 결혼과 출산도 미뤄진다.

특히 20대가 경제력을 갖추는 데 부모 경제력이 영향을 미치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진다. 고소득 전문직으로 꼽히는 로스쿨의 경우 지난해 서울 출신 입학생 중 강남 3구(송파, 서초, 강남) 지역 학생은 23.9%(137명)에 달했다. 4명 중 1명은 강남3구 출신인 셈이다. 반면 금천구, 강북구, 도봉구 출신 입학생은 각 2명, 5명, 9명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변화로 20대가 수행하던 ‘기본역할’이 사라져 우울증이 급증한다고 분석한다. 전통적으로 20대에게 부여되는 취업, 결혼 등이 어려워질수록 정신질환이 늘어난다는 것. 한양대 상담센터 이성원 책임연구원은 “구직난으로 인한 우울감 상담이 3년 전과 비교해 2배 늘었다”며 “중증 우울증 환자로 보이는 대학생도 증가해 방학예약이 꽉 찬다”고 설명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세대의 착취’라는 용어로 20대 우울증을 분석했다.
부모세대가 주입한 경쟁의식이 자녀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그는 “IMF를 기점으로 부모세대들이 실직을 겪으며 자녀들을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면서 “1990년대 말 사교육열풍과 함께 현재 20대는 타인과 비교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했고 현재 20대 우울증과 밀접하다”고 말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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