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 "산업 고령화 급격히 진행… 새 산업 나타나야"

      2018.02.12 16:32   수정 : 2018.02.12 20:55기사원문

9할→4할→0.

지난 27년 동안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상대로 기록한 승률이다. 1990년대에는 열 번 중 아홉 번 승리했다면, 2000년대에는 네 번으로 감소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올해도 이기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3.8%인 데 비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0%에 불과하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사진)이 이른바 '저성장 불감증'을 걱정하는 이유다.

유 본부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제연구원에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근무하면서 기업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요새 한국 경제의 저성장 불감증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는 " 더 암울한 건 성장담론이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일례로 문재인정부가 경제를 운영하는 3대 축(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들었다. 유 본부장은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는 차근차근 진도를 나아가고 있지만 혁신성장은 그렇지 않다"며 "분배적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기존 기업들이 정체돼 있다"고 꼬집었다.

산업의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1등공신은 장치산업이었다. 철강, 조선, 자동차 등은 대한민국을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반열에 올렸다. 하지만 장치산업은 이제 평균나이가 56세에 이를 만큼 노후화됐다. 유 본부장은 "성장동력이 완전히 떨어져 있다"며 "새로운 산업이 시급히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경제대국 1위 미국은 정보기술(IT) 산업을 지속 발굴하면서 지난해만 2% 초반대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등장을 방해한다. 유 본부장은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네거티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데 반해, 포지티브는 허락되는 행위를 제외한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포지티브 시스템이 네거티브 시스템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책인 셈이다.

고비용이 따르는 현재 경영환경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유 본부장은 "외국 주요 국가들은 법인세를 내렸지만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며 "기업들에게 저비용 경영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비용 경영환경이 지속되면 일자리 창출에도 방해가 된다. 그는 "근로자들의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면 기업들이 재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왔다. 그런 그에게 가장 뿌듯한 기억은 지난 2009년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됐던 순간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기업들로 하여금 국내 회사에 순자산의 40% 이상을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대기업들의 소위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 제도는 대기업 투자를 지나치게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2009년 폐지됐다.

유 본부장은 "그 제도는 2009년 3월 3일 자정이 다 돼서 폐지됐다"며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그는 "이 제도 폐지를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전경련 조사부에서 기업정책팀장을 맡고 있던 그는 출자총액제한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조사하고 이를 정부에 전달했다. 그는 "그때 정부 측에 전달한 논리적 뒷받침이 제도 철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근로시간 단축제(주당 최대 68시간→52시간)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 본부장은 "이른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정부 정책에는 긍정적이다"라는 전제를 밝혔다.
문제는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급격히 줄이면 일부 기업들은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 본부장은 지난 2015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만든 합의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정 합의안은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되 최대 4년 동안 유예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등의 충격완화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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