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몸 집착, 무리한 다이어트로 몸 망쳐
2018.03.19 17:25
수정 : 2018.03.19 17:42기사원문
섭식장애 환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다. 젊은 여성이 절반을 넘는다. 섭식장애는 저체중임에도 살찌는 것에 대한 공포감으로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거식증'과 단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고 체중 증가를 막기위해 구토를 반복하는 '폭식증'이다.
취업준비생 김유리씨(가명.여.24)는 키 158cm, 몸무게 36kg다. 8년간 폭식과 거식을 오갔다. 현재는 8개월째 거식증을 앓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만 해도 56kg으로, 정상 체중이었지만 하체가 통통하다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급식 때 밥 두 숟가락, 나물반찬 몇 개만 먹었다. 매일 밤 2시간 동안 줄넘기를 4000개씩 했다.
김씨는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살이 찔까봐 함께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로는 먹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거부해 가족과 친구를 피한다"며 "(정신질환) 병원을 다니면서 살이 찐 기억이 있어 다시 치료를 받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입버릇처럼 "살 빼라"… 섭식장애 유발
19일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섭식장애(식사장애.거식.폭식증) 치료를 받은 환자는 1만3918명이다. 여성 환자가 81%(1만1330명)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정신질환 특성상 치료받지 않는 환자가 더 많아 이같은 통계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차보경 한서대 간호학과 교수 연구 결과 20대 여성 10명 중 1명이 섭식장애 고위험군이었다. 폭식증 환자 절반은 거식증을 동반한다.
삼성서울병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홍진표 소장은 "모두 음식과 체중에 대한 불안이 만든 자기 파괴적 정신질환"이라며 "(환자가) 비만에 대한 공포를 당연시하고 수치스러워해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홍 소장은 섭삭장애 원인으로 자신감과 미(美)의 획일화를 꼽았다. 그는 "사회에서 날씬함을 미의 기준으로 강조해 체중조절이 자신감과 선망을 얻는 수단이 됐다"며 "살 빼는 것을 자기관리라면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사회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다보니 자존감은 낮아져 섭식장애 환자는 우울증도 같이 앓는 경향이 있다.
일부러 거식증에 걸리려는 사람도 있다. 3만명이 가입한 섭식장애 인터넷 카페 '소금인형' 관리자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거식증을 검색해 카페에 들어온다"며 "가입 이유로 '말라비틀어지고 싶다. 거식증에 걸리고 싶다'는 분들도 일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몸무게와 먹는 것으로 무수한 고민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실제 너무 마른 여성이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 조사결과, 2030대 여성 저체중 유병률은 1998년 8.8%에 그쳤지만 2012년 14.0%로 증가했다.
■여자=마른 몸매=성공?
서울의 한 유명대에 재학 중인 이수연씨(가명.여.21)는 대학 입학부터 폭식증을 겪었다. 기숙사 룸메이트가 자신보다 예쁘다는 이유였다. 부러움과 열등감이 닥치면 빵과 과자를 입에 쑤셔 넣었다. 마음 속 공허함을 채워주는 기분이었다.
섭식장애는 왜 젊은 여성에게 많을까. 전문가들은 초기 성인기 여성 상당수는 '외모가 능력'이라는 사회 분위기를 느낀다고 분석한다. 학교,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몸매가 능력으로 인정받아 외모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2015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880명을 대상으로 '채용 시 지원자 외모 평가여부'를 물은 결과, 여성지원자의 외모평가(40.3%)가 남성지원자(6.2%)에 비해 6배 높았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남성 권력이 여성 외모를 활용했고 몸이 도구화된 사회"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섭식장애 논의가 활발하다. 평창동계올림픽 노르웨이 선수단은 섭식장애 방지를 이유로 선수 몸무게를 비공개했다. 2015년 프랑스는 체질량지수(BMI)가 일정 수치 이하 모델을 고용할 수 없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상화 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섭식장애가 논의되지 않는 사회에 대해 "그간 여성 몸은 평가대상이었다"며 "섭식장애는 여성 건강권과 직결된 만큼 사회 환기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