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트-홀리법
2018.03.25 16:54
수정 : 2018.03.25 18:35기사원문
그래도 스무트-홀리법만 없었다면 대공황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였다. 그는 길거리로 몰려 나온 실업자와 농민을 달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칼을 꺼내 들었다. 1930년 6월 같은 당 소속 리드 스무트 상원 재정위원장과 윌리스 홀리 하원 세입위원장이 주도한 스무트-홀리법안에 서명한다. 2만여종의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에 달하는 초고율 관세를 물리는 것으로 사실상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후버와 공화당 정권은 이 법안이 미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출해줄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세계를 보호주의 무역전쟁으로 몰고 갔다. 프랑스와 영국, 캐나다 등 20여개국이 앞다퉈 고율의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그 결과 글로벌 무역은 치명타를 입었다. 이후 5년간 세계 교역량은 66%나 줄었고, 미국의 국민총생산(GNP)도 거의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무역감소는 세계 대공황을 장기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버가 실패했던 그 길을 다시 가려고 한다. 이번에는 상대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는 6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를 물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도 곧바로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산 철강과 돈육 등에 보복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미국이 중국에 무차별 살상무기인 집속탄을 투하했다"고 개전 소식을 알렸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중국인들이여 빨리 일어나라. 트럼프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저명 경제학자들은 무역전쟁을 승자 없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88년 전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법의 실패가 이를 입증한다. 트럼프는 끝내 판도라 상자를 열 것인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