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가스로 러시아 몰아세웠던 영국, 정작 증명은 못해
2018.04.04 11:24
수정 : 2018.04.04 11:25기사원문
영국 정부 산하 연구소가 지난달 전직 러시아 간첩 암살 미수 사건에 쓰인 신경가스를 분석한 결과 구체적인 제조국가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로써 암살 미수가 러시아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신냉전 분위기를 몰아간 영국 정부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영국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의 게리 이이킨헤드 소장은 3일(이하 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당시 사건에 쓰인 물질이 ‘노바촉’ 이라는 신경작용제라는 사실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일은 이 신경작용제가 뭔지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지 그것이 어디서 제조됐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에이킨헤드 소장은 DSTL이 해당 물질을 두고 어디서 제조됐는지를 파악하려고는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물질이 "만들려면 지극히 정교한 수단들, 국가기관의 능력에서만 가능한 어떤 것"에 해당하는 물질이라는 점은 확인했다.
지난달 4일 영국 런던 근교 솔즈베리에서는 과거 러시아에서 영국의 이중간첩으로 활동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노바촉에 노출되어 중태에 빠졌다. 영국 정부는 노바촉 제조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후 러시아가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며 같은달 14일에 23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지난달 26일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 대다수가 영국을 지지하며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들을 쫓아냈다. 현재까지 솔즈베리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한 국가는 27개국으로 150명이 넘는 외교 인력이 추방당했다.
독일 집권 기독민주당 부의장단 일원인 아르민 라셰트는 이번 DSTL의 발표를 놓고 동맹들에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설득하고 나선 영국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한 회원국이 거의 모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 연대를 강요하려면 어떤 특정한 증거를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러시아에 대한 생각과 상관없이 내가 배운 국제법은 내게 다른 나라들을 다루는 다른 방식을 가르쳤다"며 비판했다. 사건이 발생한 솔즈베리를 지역구로 둔 집권 보수당 존 글렌 하원의원은 이날 인터뷰가 러시아의 선전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러시아는 솔즈베리 사건 개입설을 줄곧 부인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번 사건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부터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영국 정보기관이 개입해 저지른 일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DSTL의 분석은 큰 그림의 일부분이다. 러시아가 이런 뻔뻔하고무모한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게 우리의 평가다. 국제사회가 동의하듯 (러시아 책임외에) 타당하다고 생각할 만한 다른 대안은 없다"며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