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충 될까봐..움츠리는 엄마들
2018.04.11 15:00
수정 : 2018.04.11 15:00기사원문
‘아기 울음 그치는 법’
초보엄마 정모씨(35)는 4개월 된 아기와 외출할 때면 인터넷에서 아기 달래는 법을 찾는다. 혹여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쏟아질 시선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정씨는 “얼마 전 지하철에서 아이가 울었는데 건너편 대학생 얼굴이 확 찌푸려지 것을 봤다”며 “맘충이란 단어가 머리를 스쳐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주부 강모씨(33)는 카페에서 4세 자녀를 데리고 친구들을 만났다. 강씨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친구들과 대화하는데 누군가 ‘맘충들 많다’고 통화하는 걸 들었다”며 “아이가 떠들지도 않고 카페에 있을 뿐인데 죄지은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맘충이 일부 몰지각한 엄마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젊은 엄마들에 대한 비난처럼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나도 맘충일까?
맘충(mom-蟲)이란 용어가 확산되면서 젊은 엄마들이 ‘자기검열’에 들어갔다. 맘충은 공공장소에서 기저귀를 가는 등 이기적 행동을 하는 젊은 엄마를 벌레에 빗댄 말이다. 지난해 맘충-노키즈존 논란 이후 공공예절을 중시하자는 분위기가 있지만 지나친 혐오표현에 엄마들이 위축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sns에선 '맘충아님' '맘충되지말자‘ 등 해쉬태그가 빈번하다.
전문가들은 맘충을 사회적 기준으로 정해 판단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억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화 양성평등교육원 교수는 “맘충이란 말은 여성 스스로 만든 말이 아니라 타자의 기준”이라며 “일부 남성의 몰지각한 행동에 이토록 낙인 같은 혐오표현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임신, 양육은 더불어 가는 사회를 위한 중요역할을 한다”며 “육아를 여성에게 한정지을 뿐 자신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맘충을 개인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 본 연구도 있다. 경기연구원 ‘2016 노키즈존 확산 어떻게 볼것인가’는 육아스트레스가 공공장소에서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가 된다고 말한다. 온종일 육아에 시달리다보니 아이를 통제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원 조사결과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거나 ‘피곤할 때 아이가 놀아달라고 보채면 귀찮은 생각이 든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경우가 각각 약 46%, 50%에 달했다. 김도균 연구위원은 “주변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3명 이상인 경우 스트레스는 눈에 띄게 낮아진다”며 “엄마를 혐오대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고립된 육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시간제 보육반 등 육아 네트워크를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맘충 소리 들으며 육아는 혼자
3세 아이를 둔 직장인 엄마 김모씨(37)는 “아이양육은 부부가 함께하는 것인데도 맘충은 여성에게 육아를 전담하라는 압력이 깃든 혐오”라며 “차라리 부부충이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맞벌이인데) 남편은 집안일을 돕는다고 표현한다. 육아는 제게만 맡겨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같이 돈을 벌어도 여성이 ‘혼자 육아’를 경험한다. 통계청 ‘2016 일·가정양립 지표’에 따르면 2014년 맞벌이 가구 여성 일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14분이다. 남성 가사노동시간은 40분에 불과하다. 5년 전 보다 남자는 3분 증가하고 여자는 6분 감소했다. 한국여성민우회 ‘2017 성차별 보고서’에서 가족관계 부문 성차별 1위 부문은 가사/돌봄 노동 강요였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육아를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한 남성의 몰이해가 반영됐다”며 “남성 개입이 여전히 부족한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공유돼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여전히 성역할 고정관념이 있어 육아에 대한 남상의 이해와 존중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