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사장은 없나요?'..車사고율 낮은데도 억울한 女운전자

      2018.04.18 17:21   수정 : 2018.04.18 17:21기사원문

'여자일 줄 알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직장인 박모씨(30)는 정지선을 한참 넘어서야 멈춰선 차량의 운전석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운전대를 쥐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박씨는 "차에 치일 뻔할 때마다 운전자를 보면 대부분 여자였다"며 "여성혐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김여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사고가 났거나 사고 위기 때마다 차량 운전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습관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택시 승객의 성별에 따라 택시기사의 태도도 달라진다.

18일 한국여성민우회가 발표한 '2017 성차별 보고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성차별을 당했다는 응답이 두번째로 많았다. 도로 위에서도 시민들은 성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율 낮아도 여성은 '김여사'

'초보운전, 김여사 운전 중'

최근 이 같은 앞차량 초보운전 스티커를 본 김유정씨(31·여)는 기가 막혔다. 스티커 문구 옆에는 하이힐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김씨는 "김여사가 초보운전이냐. 그럼 여자는 다 초보운전이고, 운전을 못한다는 말인가"라며 "이런 문구를 만드는 회사나, 좋다고 붙이는 운전자나 성차별 개념이 없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차를 제대로 못하거나 황당한 사고를 내는 여성운전자를 뜻하는 '김여사'의 역사는 10년을 넘었다. 2000년대 중반 차량 3대가 설 법한 공간에 가로로 주차된 차량 사진 등이 담긴 '김여사 시리즈' 온라인 게시글이 단초가 됐다. 2012년에는 '김여사 시리즈 완결편'도 이어졌다. 이후 지난해 10월 한 여성운전자가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점포를 차로 들이받는 등 여성운전자가 낸 사고 소식에는 꾸준히 '김여사'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김여사'는 여성이 운전.주차를 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낳은 차별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여성 가해운전자 교통사고 비중은 2015년 총 23만35건 중 4만3990건으로 18.9%였고, 2016년 총 22만917건 중 4만3506건으로 19.8%에 그쳤다.

여성운전자 교통사고율은 운전면허자 비중과 비교해도 적은 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여성 운전면허 소지자 비율은 2015년 3029만3621명 중 1237만3038명(40.8%), 2016년 총 3119만359명 중 1289만8375명(41.3%)으로 40%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운전은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사람의 행위라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며 "'솥뚜껑 운전사(전업주부)'나 '김여사'와 같은 차별적 표현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박힌 여성성을 반영,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성추행 시비 우려, 남자 대리기사 찾기도

택시를 타면 한마디씩 들을 각오도 해야 한다. 윤모씨(32)는 여자친구 동네에서 데이트를 한 후 택시를 타자마자 기분이 나빴던 경험을 털어놨다. 여자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며 차에 탑승한 윤씨에게 택시기사가 "남자가 왜 여자친구 집까지 안 데려다주고 먼저 택시 타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별 대꾸 하지 않고 넘겼지만 이후부터는 여자친구를 먼저 보낸 뒤 택시를 탄다고 전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여성민우회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은 택시기사로부터 "아침부터 안경 낀 여자를 태우면 하루 종일 재수 없다" "여자가 왜 앞자리에 앉느냐"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얼른 시집 가서 남편 돈 타먹지 왜 늦은 시간까지 일하느냐"는 등 성차별적 말을 듣는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미투운동이 이어지면서 남성이 대리운전을 부를 때는 남성 운전기사만 찾기도 한다. 대리운전을 자주 이용하는 김모씨(59)는 대리운전 예약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여자 말고 남자 대리운전 기사로 불러달라"는 것. 김씨는 "예전에 지인이 술을 마시고 여자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가 성추행 시비가 붙어 합의금을 준 적이 있다고 들었다"며 "아예 이런 논란이 없도록 남자기사를 부르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최원진 활동가는 "택시를 타면 손님이 왕이어야 하지만 젠더 문제가 맞물리면서 기존 시장 권력체계도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며 "택시라는 사적 공간에서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성 기사를 찾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할 수 없지만 또 하나의 펜스룰을 선언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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