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 "아동성학대, 사회기관 나서야"
2018.05.03 15:31
수정 : 2018.05.03 15:31기사원문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동을 지켜달라는 국민청원이 3일 20만명을 넘어섰다. 한 네티즌이 "7살 딸과 매일 성관계를 맺고 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한 사진이 단초가 됐다. 아이 음부 부위에 남성의 성기 사진을 갖다 댄 사진이었다.
아이들은 성적 학대를 '학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낮은 신고율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성적 학대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파이낸셜뉴스가 만난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 겸 무궁화복지월드 상임이사(사진)는 "성적 학대는 아동에게 치유되기 힘든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며 "아동 성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아동과 부모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사회제도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쪽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는 지난 1989년 우리 나라 최초로 설립된 아동학대예방 민간단체다. 설립 당시부터 매년 2차례 아동학대예방 관련 학술대회를 열고 학대 피해아동을 위해 공동생활가정 '그룹홈'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은 30년 가까이 아동학대라는 그늘에 숨어있던 아동들을 상담해 왔다. 가슴에 담아 온 피해 아동들의 사연은 그의 인생 일부가 됐다.
이 회장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 초등학교 남학생이 과부였던 어머니와 저녁마다 관계를 맺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전했다. 어머니가 신체 컴플렉스 때문에 정상적인 성관계를 갖지 못하자 아들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이 회장은 "이 남학생은 친구들에게 이런 사실을 자랑하다 주변의 반응을 보고서야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그전까지는 부모에게 예쁨받는, 당연한 일인줄만 알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에 따르면 2016년 집계된 아동 성학대 493건 중 부모나 대리양육자, 친인척, 지인이 가해자인 경우가 79.4%다. 이 회장은 "아동학대 전체 신고 중 성학대로 접수된 것은 2.6%"라며 "가정 등 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외부로 드러나지 않아 특히 성학대 신고율이 매우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이 어렸을 때부터 성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잘못된 성관념을 갖는 등 후유증에 시달린다. 이 회장은 " 자신을 '5센치'라고 소개하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을 만났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원조교제를 하고 받는 돈뭉치 두께'라며 아무렇지 않게 답해 놀랐다"고 털어놨다. '성'을 거래가 가능한 상품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아동 성학대 예방과 사후조치를 위해서는 교육과 사회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동 성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공교육 과정에서 부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며 "또 성폭력에 대해서는 사회기관이 좀 더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사회기관이 나서기 위해서는 아동 권리에 기반해 아동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989년 체결된 54개 조항의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크게 4가지 아동의 권리를 근간으로 두고 있다.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생존의 권리' 모든 형태의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보호의 권리' 잠재능력을 발휘할 '발달의 권리' 의사표현을 존중받는 '참여의 권리'가 그것이다. 성적 학대 역시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학대 중 하나다.
이 회장은 부모의 친권을 어느 정도 제한하더라도 사회기관이 아동권리를 근거로 아동 보호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2014년 9월 아동학대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경찰이 부모의 친권 때문에 아동학대에 관여하기 어려웠다"며 "그러나 지금은 부모가 출동한 경찰관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친권은 여전히 강하지만 범죄행위와 관련이 있을 경우 경찰 등 사회기관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한 부모가 2~3살 아이와 함께 뛰어내려 '동반자살'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며 "아이가 자살을 선택한 게 아니다. 아이의 입장은 빠져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동반자살로 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