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자식 용돈에 부모 부양까지.. 정작 내 미래엔 '한숨'

      2018.05.07 16:43   수정 : 2018.05.07 17:04기사원문

3년 전 남편과 사별한 최순자씨(62.가명)는 최근 서울 강남의 99㎡(30평)대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이사할까 고민 중이다. 최근 두 아들이 잇따라 결혼해 결혼자금 2억원씩을 대줬는데 이번에는 주거 걱정을 털어놓기 때문. 주부인 최씨가 가진 재산은 아파트가 전부이지만 자식들은 돌아가면서 "전세로 이사하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자주 권한다. 그는 "자식이 원하는데 자신만 생각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는 마음에 돈을 해줄까 고민"이라고 했다.



최씨는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치매를 앓는 80대 시아버지를 4년 동안 집과 요양원에서 모셨다. 이제는 자신의 노후 걱정이 크다.
최씨는 "돌이켜보니 막상 내 인생은 신경쓰지 못했다"며 "우리 세대는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 결혼할 때까지 죽어라 뒷바라지하는데 노년에 용돈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취업한 딸에 용돈…결혼한 딸은 "애 봐달라"

7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최씨와 같은 50~60세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는 70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자식과 노부모 양 세대를 모두 돌보는 '샌드위치 세대'라는 특징이 있다. 최근 10%를 웃도는 청년실업률에 윗세대는 노후준비 부족으로 양쪽을 뒷바라지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특히 자녀들이 취업하고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도 경제적 도움을 받거나 손녀.손자를 양육해달라는 경우도 늘고 있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가 올 3월 5060대 남녀 2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자녀와 노부모를 함께 지원해야 하는 가구는 세 집 중 한 집꼴(34.5%)이었다. 이들은 월평균 118만원을 양 세대 부양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직 교사 박모씨(58)는 지난해 취업해 월급 200만원을 받는 딸에게 매달 40만원씩 쥐여준다. "돈이 없다"면서 자주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박씨는 "종종 옷을 사주거나 여행비를 줬는데 최근 이직한다면서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해 학원비 겸 월세 비용으로 돈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취업하면 부모님 용돈부터 챙겼는데 딸은 본인 결혼자금이라도 잘 모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결혼한 자식들이 부모 집으로 '리턴'하는 사례도 많다. 공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김모씨(62)는 부인과 생이별할 판이다. 딸은 2년 전 손녀를 낳아 양육을 도와달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최근 외국계 회사로 이직한다며 김씨 부인에게 해외에서 애를 봐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손주를 한국에서 잘 돌봐주겠다고 하는데도 딸은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며 외국행을 고집한다"며 "딸의 커리어를 생각해 아내는 가겠다지만 우리 부부 인생은 뭔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2017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가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는 30.6%였고 부모 중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응답자는 77.8%에 달했다.

■평생 뒷바라지만…"빈곤 노인될까 걱정"

뒷바라지에만 전념하다 늦게 노후 준비에 나서지만 어려움이 많다. 빈곤노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에 은퇴를 앞둔 나이에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기도 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7년 60대 경제활동인구는 421만명으로, 전년(395만명)보다 급격히 늘어났다. 20대 경제활동인구(406만명)를 추월한 것이다.


경기도가 2016년 도내 베이비부머의 노후준비 현황을 조사한 결과 4가구 중 1가구는 미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적 빈곤이 예상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명이 늘고 청년실업 문제가 커지면서 베이비부머들이 양측을 책임져야 하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부양의무를 지게 됐다"며 "문제는 이 세대 구성원들이 이중 부담으로 인해 향후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향후 경제성장 하락이나 각종 사회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를 우선 해결과제로 추진하되 베이비부머 지원방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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