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위협하는 아파트 '꽁초테러'
2018.05.13 16:54
수정 : 2018.05.13 16:54기사원문
경기도 한 아파트에 사는 신모씨(36.여)는 지난 8일 남편, 아이(1)와 함께 단지 밖을 나갔다가 '꽁초 테러'를 당할 뻔 했다. 부부 얼굴을 향해 불이 붙은 꽁초가 날아왔기 때문. 옆에 있던 아이가 화상을 입었을 수 있던 터라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남편이 즉시 아파트 복도쪽을 올려보자 흡연자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집 담배 피우고 꽁초 던져… 화상, 화재 우려
13일 일선 구청, 아파트 입주민 등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내 '집 담배족(族)'이 던진 꽁초에 맞는 입주민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복도.베란다 등에서 흡연한 뒤 꽁초를 밖으로 던져 담뱃재 등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특히 아파트 저층은 화단으로 돼 있어 화재 우려도 크지만 이를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B씨(여)도 지난 4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꽁초에 맞아 아파트 입주민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항의글을 올렸다. 단지를 걷다 불 붙은 꽁초가 얼굴을 스쳐 어깨 위로 떨어진 것이다. 그는 "얼굴에 맞았으면 화상으로 이어졌을 상황"이라며 " CCTV가 있는지 경비실에 물었으나 찾을 수 없어 구청에 민원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2014년에는 유모차에서 자던 아기가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꽁초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한 구청 쓰레기 투기 단속원은 "상습적으로 담배를 투척하는 행위 때문에 민원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고 요즘은 동영상으로 얼굴까지 찍어 증거로 보낸다"며 "무단 투기는 과태료 5만원 처분이 전부이고 증거가 없으면 주의조치가 고작"이라고 설명했다.
흡연자가 복도 주변에 가래침을 마구 뱉는 경우도 많다. 특히 손에서 튕겨 나간 꽁초는 화재의 주 원인이기도 하다. 1층 화단에 불이 붙거나 아랫집 창문으로 빨려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올 3월 서울 노원의 한 아파트 입주민 C씨는 "위층에 사는 사람이 담배를 핀 뒤 꽁초를 베란다에서 그대로 땅으로 버려 화단에 불이 났다"며 "1층 사는 사람으로서 황당하고 무섭다"고 밝혔다. 실제 대형 화재로도 번진다. 지난달 22일 경기 오산의 6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 18명이 부상당하고 2월에는 수원의 고층 아파트 1층 화단과 14층에서 동시에 불이 났다. 경찰 조사 결과 모두 꽁초를 무단 투기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월 전국 2029건의 화재 사고 중 512건이 담배꽁초로 인한 것이었다.
실제 서울 주변 고층아파트 10여 곳을 대상으로 현장 확인한 결과 1층에 꽁초를 투척하는 행위가 비일비재였다. 꽁초를 화장지에 싸서 버리기도 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꽁초가 널브러져 있는 화단은 보기에도 흉측했다.
■집담배 갈등 증가세
꽁초테러는 주민들에게도 공포다. 아이들이 1층 화단에서 흙장난을 하기도 해 주부들은 더욱 신경이 쓰인다. 김모씨(38.여)는 "5살 아이가 화단에서 개미를 잡으러 가는데 꽁초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어 경비실에 자주 신고하지만 바뀌는 게 없다"고 말했다.
층간 흡연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꽁초 무단 투기인 셈이다. '집담배'로 인한 분쟁은 층간소음과 함께 대표적인 아파트 갈등 사례로 꼽힌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4년부터 최근 4년간 조사한 아파트 내 간접흡연 관련 분쟁은 총 1215건에 달했다. 집담배 갈등은 2015년 260건에서 2016년 265건, 지난해 353건으로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주민들이 대응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피해 사실을 단지 내에 공지하거나 관리실에 민원을 제기하는 정도다. 올 2월부터 경비원들이 층간흡연 분쟁을 직접 조정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소극적이라는 불만이 많다. 10년째 강남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 오모씨(62)는 "흡연 민원이 예전부터 많았는데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을 하고 안내문을 곳곳에 붙이지만 사실상 임시방편"이라며 "경비원도 입주민 눈치를 봐야 해 그 이상 갈등을 조정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