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구제금융

      2018.05.14 15:41   수정 : 2018.05.14 18:07기사원문
아르헨티나가 현지시각 8일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 달러 규모의 차관 지원을 요청한 뒤 이 사태가 몰고 올 파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 2001년, 2003년에도 채무불이행 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바 있다.

페소화 가치는 달러화에 대비해 최저치 경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달러화 가치는 연초 대비 20% 가량 빠졌으며, 주가지수도 10% 넘게 떨어졌다.

크레딧디폴트스왑(CDS) 프리미엄은 400bp 가까운 수준으로 오르면서 2017년 초 이후 최대치로 확대됐다.

과거 미국이 금리인상 사이클에 진입한 뒤 신흥국들의 위기가 심심찮게 찾아오곤 한 가운데 다시 한번 아르헨티나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

이번에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꽤나 영향을 미쳤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페소 가치가 떨어지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대폭 인상하면서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으나 페소 약세 흐름을 막지 못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4월 이후 47억달러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으나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의 약 8%가 소진돼 현재 550억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 아르헨티나, 빠져나가는 돈 막기 위해 급격한 금리인상

아르헨티나는 최근 정책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코스콤 CHECK단말기(3943)를 보면 아르헨티나는 4월26일 금리를 175bp(1.75%p) 인상해 기준금리를 28.00%로 끌어올린 뒤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다. 5월8일 550bp 인상한 데 이어 5월10일엔 150bp를 더 올렸다. 이에따라 아르헨티나 정책금리는 무려 40.50%에 달한다.

아르헨티나는 올해 물가목표치를 10%±2%p에서 15%로 상향조정했으나 1월엔 정책금리를 150bp나 내리면서 중앙은행의 물가 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이후 4월 하순엔 외국인에 대한 자본취득세 부과를 발표해 자금 유출을 부추겼다.

물가상승률은 25%를 넘는 수준에 이르렀고 GDP 대비 6%를 넘는 재정적자 해결을 위한 대규모 국채발행으로 정부 부채는 GDP의 53%에 달했다. 경상수지 적자는 지난 해 GDP의 5%에 육박하는 등 전체 경제가 큰 어려움에 빠졌다.

아르헨티나 경제 자체의 동력이 상실된 가운데 미국의 금리인상마저 이어지면서 취약한 신흥국인 이 나라가 다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IMF가 구제금융을 지원하더라도 구조적 취약성이 단기간 내 개선되기 어려워 금융불안이 재차 확대될 수 있다"면서 "최근 이 나라의 금융불안은 외부요인 보다 내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으나 달러 강세 등 외부 충격이 가세할 경우 투자 심리가 재차 악화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아르헨티나가 빠져 나가는 외자를 붙잡기 위해 금리를 무려 40%까지 올렸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도 많다. 오히려 높은 금리는 기업들의 조달비용을 올려 채무불이행 우려를 키울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르헨티나 사태는 터키나 브라질 등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함께 통화약세가 심화된 신흥국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 아르헨티나 사태, 외환보유액의 한계 보여준다는 지적도

아르헨티나의 IMF 구제금융 요청은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르헨티나가 미국 달러화 비축에도 외환위기를 겪고 있어 신흥국이 강달러 기조에 따른 자금유출에 대비해 준비통화를 비축하는 것이 큰 효과가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가 최근까지 IMF 권고액과 비슷한 수준의 준비통화를 쌓았지만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페소화의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의 8%인 50억 달러를 매각했음에도 4월 마지막 주 페소화가 1.6% 추가 하락하는 등 준비통화가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한 효과가 경미했다는 시장의 견해가 우세하다"고 밝혔다.

필요한 외환보유액을 놓고는 한국에서도 그간 많은 논란이 이어졌다. 한국은 현재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을 크게 웃도는 4000억달러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이 원화 가치 가치 하락에 외환 보유액의 20% 이상을 사용했지만, 실제 위기를 억제한 요소는 통화스왑 체결이라는 평가 등도 나왔던 게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또 "2014년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 방어에도 유가 반등이 기여했다는 의견이 다수"라면서 "이에 따라 준비통화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진단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결국 신흥국이 외환보유액으로 달러화를 많이 쌓더라도 이를 파는 순간 시장이 오히려 부정적인 신호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견해들이 나오는 것이다.

■ 아르헨티나 위기, 우리에겐 아직 먼 얘기이긴 한데…

신흥국들은 아르헨티나 사태가 주변국의 위기로 번질 수 있을지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우선은 아르헨티나에 비해 다른 신흥국들의 사정이 좋다는 평가가 많다. 예컨대 신흥국들의 물가상승률이 아르헨티나의 25%를 넘는 정도로 높지 않은 데다 재정 상황 등도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세원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터키나 나이지리아 등은 두 자리수의 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으나 브라질, 중국, 러시아 등은 정부 목표 보다 낮은 물가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브라질, 인도 등이 아르헨티나보다 높은 재정적자를 보이고 있으나 민간 부문에서는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외화표시 부채 비율의 차이"라며 "아르헨티나 정부, 기업 부채의 64%가 달러 및 기타 외화표시 부채인 반면 태국이나 브라질은 각각 17%, 16% 수준이어서 비교가 어렵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사태가 신흥국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는 어려워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터키의 경우 환율이 급락하는 등 아르헨티나 사태에 따라 긴장감을 높이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인접국인 브라질 역시 아르헨티나 사태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미국 금리 인상이라는 위험요인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흥국들이 자본유출 우려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들도 적지 않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 인상, 무역전쟁, 중동 갈등으로 인한 달러 강세로 맷집이 취약한 아르헨티나가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터키의 환율은 급락했다"면서 "그러나 브라질 등 주요 신흥국의 맷집이 좋아 이슈가 확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환 변동성은 여전히 높겠지만 브라질 헤알화 약세를 장기적 관점에선 분할 매수 기회로 활용할 것을 권유한다"고 밝혔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20%를 넘는 고물가를 잡지 못했고 자금 조달을 달러 채권시장에 크게 의존하면서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키운 측면이 크다. 브라질만 하더라도 물가 상승률은 3%대에서 안정돼 있다.


아르헨티나 사태는 아직 국내엔 먼 얘기처럼 인식되고 있다. 남미를 대표하는 브라질이나 한국과 관련이 깊은 동남아 등으로 위험이 전염이 되지 않는 한 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우세하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아르헨티나 구제금융 사태는 최소 브라질로 전염이 되는 게 확인돼야 사람들이 좀 긴장할 것"이라며 "아시아 신흥국에서도 그 영향을 받을 때 한국도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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