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를 응원하는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
2018.05.16 15:20
수정 : 2018.05.16 15:20기사원문
서울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 중인 김지원 작가(26)는 그간 고심해서 그린 작품 4점을 모두 팔았다. 지난달 에이컴퍼니가 주최한 전시회를 통해서다. 작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신진작가에게는 소중한 기회다.
에이컴퍼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 판로를 개척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정지연 대표는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가치를 믿는다. 미술 작가들의 경제적, 정서적 창작 환경에 주목한다”고 회사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젊은 예술가를 응원하는 기업
정 대표는 2011년 수많은 예술가가 꿈을 접는 게 안타까워 창업에 나섰다. 우연히 젊은 화가 작업실을 방문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작업실 문에 전기·수도세 독촉장이 붙어있었다. 화가는 그림을 팔아주는 화상들에게 위축됐다. 정 대표는 “작품이 800만원에 팔리는 작가여서 더 의외였다”며 “1년에 작품 팔 기회는 한두 번에 불과하고 이마저 작품을 팔아주는 화랑과 절반씩 나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청년 화가가 겪는 문제를 부족한 수입과 정서 고립으로 나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판로를 고민하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아트페어와 갤러리를 만들었다.
에이컴퍼니는 2012년 이후 올해 5회째 ‘브리즈 아트페어’를 개최했다. 투명한 공개모집으로 신진 작가를 선정한다. 아트페어에서는 그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작가와 전시계약서를 작성한다. 작품가격도 명시한다. 작품이 팔리면 작가에게 60%가 돌아간다. 정 대표는 “많은 화랑이 작가와 구두계약하는 데 작가들 애로사항"이라며 “작품 가격을 공개하면 일반 시민들도 예술 작품 구매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트페어에는 작가들이 전시장을 지키며 관람객들에게 그림을 설명하고 질문에 응한다. 작가들도 관객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해 다음 작품에 영감을 얻는다. 정 대표는 “예술가는 작품을 판매하는 경험이 드물어 평가받을 기회가 적다보니 정서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며 “관객들을 만나 작품을 팔고 팬이 생기면 예술 활동에 원동력이 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열린 아트페어에서는 작가 50명을 발굴해 작품 91점을 판매했다. 총 판매액은 8500만원. 전시작품 중 30% 이상이 팔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사는 즐거움
정 대표에게 사회적기업이란 사회문제를 규정하고 기존과 다른 방법으로 푸는 조직이다. 그는 예술을 향유하는 문화를 넓히려는 꿈이 있다. 정 대표는 “한국 그림 판매시장에서는 박수근, 이중섭 같은 유명작가 것만 팔린다. 평범한 시민들이 갤러리에서 작품을 사는 행위는 생소하다”며 “예술 향유층이 그만큼 얇다는 뜻으로, 그림을 판매하는 갤러리들도 초고가 작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만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평범한 시민도 그림을 사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가격을 명시한 갤러리, 아트페어를 운영한다. 그림은 8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고객에게 10개월 무이자 할부도 제공한다. 정 대표는 “세뱃돈을 모아 그림을 산 초등학생도 있었다. 그림을 그린 작가하고는 페이스북 친구도 됐다”며 “그 아이가 평생에 걸쳐 자기가 산 하나 뿐인 그림을 방에 걸어두는 모습이 상상된다”고 말했다.
에이컴퍼니는 예술가 복지 문제도 고민한다. 화가들이 그림 판매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상관없는 분야에서 투잡을 뛰는 게 안타까웠다. 재능을 사용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제안했다. 서울시는 에이컴퍼니가 아이디어를 낸 '우리가게 전담예술가'를 운영 중이다. 청년 예술가들이 소상공인 점포 아트마케팅 지원 활동을 통해 일 경험과 수입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정 대표는 회사를 오래 운영하는 게 목표다. 그는 “한 작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며 “저희가 발굴한 작가가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도록 발맞추겠다는 의무감이 있다”고 전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