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밭으로 푸르른 하동..쓴맛 단맛이 느껴지네,우리네 삶처럼
2018.05.17 17:04
수정 : 2018.05.17 18:15기사원문
【 하동(경남)=조용철 기자】 "초엽 따서 상전께 주고/중엽 따서 부모께 주고/말엽 따서 남편께 주고/늙은 잎은 차약 지어/봉지 봉지 담아두고/우리 아이 배 아플 때/차약 먹여 병 고치고/무럭무럭 자라나서/경상감사 되어주오"
작자미상의 조선시대 차(茶) 민요다. 겨우내 땅속 깊숙이 공들여 모은 기운을 봄날 곡우 즈음에 가장 부드럽고 향기로운 이파리로 피워올린 찻잎의 햇차는 임금께 올리고 다음으로 딴 차는 부모님께 드리며 그 다음 세물차는 남편께 준다고 한다. 초엽.중엽.말엽 다 따고 난 마지막 끝물차는 봉투에 담아 뒀다가 아이가 배 아프면 약으로 먹여 키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임금이 지리산에 심도록 했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했다"고 기록돼 있어 이미 선덕여왕 시대 이전부터 차를 즐겨 마셔왔음을 알 수 있다.
경남 하동의 주요 차 재배지역은 섬진강과 화개천이 가까워 안개가 많고 다습하고 차생산 시기엔 밤과 낮의 기온차가 커 차나무 재배의 최적 환경을 갖췄다. 하동의 차나무는 모두 돌 틈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며 전통방식으로 제조해 색깔과 맛 모두 매우 독특하다. 중국의 소엽 종에 속하는 하동의 차 나무는 일본 차종에 속한 보성 차 나무와 크게 다르다고 한다. 하동은 십리벚꽃, 화개장터, 최참판댁, 쌍계사, 칠불사, 지리산 둘레길 등 주변에 볼거리가 풍부해 사계절 여행객들로 붐빈다. 보통 하동하면 차밭인 다원과 함께 소설 '토지'의 배경을 이룬 평사리 들판을 주요 여행지로 꼽지만 금오산 집와이어, 하동레일바이크 등 탈거리도 풍부하다.
■하동, 차의 깊은 맛을 음미하다
차 시배지를 중심으로 이어진 산줄기마다 야생의 모습 그대로 이뤄진 차밭(다원)이 조성돼 있다. 어떤 차밭에 가더라도 굳이 막는 사람은 없지만 정금차밭이 그나마 관리가 잘 돼 있어 오르기 편하다. 정금차밭은 828년 신라 흥덕왕 3년 대렴공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처음으로 심었다고 한다. 내년까지 다원을 활용한 힐링.휴양.체험, 차밭길 일대를 걷는 트레킹 코스 등 기반 시설이 구축된다.
지리산 깊은 골과 쌍계사 십리벚꽃길, 그리고 화개천이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연상케하는 모암마을에 펼쳐진 3만3000㎡의 아름다운 야생차밭이 바로 '비주제다'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로지 차밭을 돌보고 차를 덖으며 살고 있는 홍만수 비주제다 대표는 '만수가 만든 차(茶)'라는 이름으로 영원한 '차쟁이'로 살고 있다. 그의 다실에서 바라보는 야생 차밭은 한폭의 그림이 무색할 정도다.
매암다원은 하동군 8대 다원으로 유기농 인증 다원으로 평지에 펼쳐진 야생 차밭이 드넓다. 매암다원에는 매암차박물관, 매암제다원, 매암다방 등 차와 관련된 시설을 한번에 둘러볼 수 있다. 하동에선 집집마다 '잭살'이라고 부르던 홍차를 만들어 뒀다가 끓여 마셨다 한다. 한국식 전통 홍자 '잭살'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하동의 홍차는 원래 이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즐겨먹었던 차인데 최근에 일반에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동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야생차박물관과 차문화센터는 하동군의 특산물인 야생차의 홍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야생차박물관과 차문화센터는 하동군이 차 시배지로 차문화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고 하동녹차의 우수성을 알리는 장으로 차 시배지 및 쌍계사와 인접해 위치하고 있다. 일년 열두달 관광객들의 쉼터로서의 역활과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가 매년 여기서 열린다.
올해는 야생차문화축제와 꽃양귀비축제가 동시에 열린다. 하동군은 19~22일 화개.양악면 일원에서 제22회 하동야생차문화축제를 열고 18~27일 북천면 직전리 일원에선 제4회 북천 꽃양귀비축제를 펼친다. 올해는 하동 전통차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와 세계축제도시 선정에 걸맞는 글로벌 문화관광축제로 성장하기 위해 야생차문화축제와 꽃양귀비축제를 연계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의도다.
차밭의 풍경과 함께 차의 깊은 맛을 음미하기 위해 '윤슬당'이라는 찻집에 들렀다. 정금차밭의 강 건너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차를 즐기며 정금차밭의 전경을 즐기기 좋은 장소다. 힐링과 건강을 겸비한 이 찻집은 화개 십리벚꽃길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윤슬당의 주인장은 약용활용연구회를 통해 일반적인 차보다는 건강식품과 차를 블랜딩해 만든 차와 함께 차와 관련된 소품을 판매한다.
녹차를 재료로 맛이 나는 특산물로 만드는 하동 유일의 녹차 전문 한정식집인 '찻잎마술'에선 녹차 음식과 차류 외에도 차꽃을 숙성한 와인, 차씨를 추출한 오일, 아름다운 녹차꽃에서 추출한 꿀, 3년을 숙성시킨 녹차꽃으로 만든 천연발효 차꽃 식초 등을 맛볼 수 있다.
■섬진강 물길 따라 찾아가는 평사리들판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면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중국 지명을 따와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고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고 지었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 속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됐다.
소설 '토지'가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둥을 세운 이유 3가지 중의 첫번째가 이곳 평사리들판 때문이다. 넉넉한 들판이 있어 3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됐다. 섬진강 물길 중 가장 너른 들을 자랑하는 평사리들판은 약 273만9000㎡에 달한다. 평사리들판 한복판, 오랜 세월을 지켜온 두 그루 소나무가 나란히 서있는 부부송도 악양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구재봉은 하동읍, 악양면, 적량면에 걸쳐 있는 하동군의 진산(鎭山)이다. 구재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오면 2003년 완공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다. 구재봉 활공장에 오르면 섬진강과 드넓은 평사리들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일몰 때 가면 일품이다. 산의 동북쪽으로 악양천이 흘러들어와 서남쪽으로 빠져 섬진강에 합류하는 모습이 일몰의 색감과 어우러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최참판댁에서 나가는 길에 찾은 입석리 하덕마을 골목길 갤러리 '섬등'에선 '차꽃 피던 날'을 주제로 하동 출신 지역작가 10여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하덕마을이 고향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정서운 할머니를 기리며 그린 '만남'이라는 작품과 마주친다. 14세에 위안부로 끌려간 사연이 있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섬진강변을 따라 소나무숲이 이어진 하동송림에선 750여그루의 노송이 넓은 백사장과 어우러져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1745년(영조 21년) 당시 도호부사 전청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섬진강변에 심은 소나무들이다. 노송의 수피(樹皮)가 거북의 등과 같이 갈라져서 옛날 장군들이 입은 철갑옷을 연상케 한다.
■금오산 집와이어와 하동레일바이크
하동에는 탈거리도 많다. 금오산 정상에는 다도해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굳이 산행을 하지 않아도 금오산 정상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차를 이용해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임도처럼 거친 길이 아니다. 대부분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차에서 내리면 여수, 남해, 사천 일대의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대가 여행객을 반긴다. 차 안에서 바라봐도 장쾌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정상 아래 전망대 주위에는 주차공간도 넉넉하다. 지난해 하동군에서 금오산 전망대와 집와이어를 만들면서 잘 다듬어 놓은 시설들이다. 널찍한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금오산 전망대 위에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금오산 집와이어는 해발 849m 정상에서 아시아 최장 길이인 3186㎞를 최고 시속 120㎞의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수려한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다.
하동 레일파크에선 풍경열차와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다. 풍경열차는 추억의 '미키' 증기기관차 모델을 재구현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연의 바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오픈형 구조로 설계돼 있어 여름철에도 시원한 관람이 가능하다. 하동레일바이크는 북천역에서 풍경열차를 타고 폐역인 양보환승역으로 이동한 뒤 다시 북천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yccho@fnnews.com 조용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