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승계·지배구조 개선' 사회적 합의부터 얻어내야
2018.06.04 17:22
수정 : 2018.06.04 21:37기사원문
■승계 제도 지원으로 인식 바꿀 때
미국의 포드, 독일의 BMW와 헹켈, 네덜란드 하이네켄의 공통점은 3~5세대에 이르는 원활한 기업경영권 승계를 통해 지금도 초우량회사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경영인(CEO) 체제가 자리잡은 선진국에서도 전통적으로 가업을 승계하는 문화는 존중된다. 초점은 온전히 기업에 있다. 어느 경영체제든 기업가치만 올릴 수 있다면 문제가 안된다는 관점이다.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는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발간한 '해외 대기업의 승계사례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들에 나타난 네 가지 승계 특징을 정리했다. 이는 △승계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과 가족 간 유대감 △상속증여세 부담 최소화 △가족의 기업지배력 약화 방지 △합법적인 제도를 통한 승계 등이다.
안정적으로 기업을 지배하기 위한 승계과정은 다양했다. 포드는 지분이 많은 주주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했고, BMW는 우호세력의 비호 속에 지분을 자손에게 안전하게 상속했다. 헹켈은 가족구성원이 주주총회에서 단결적 의결권을 행사하고 외부 매각을 제한하는 '가족지분풀링협약'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 하이네켄은 3세대 때 현재의 지주회사를 세웠고 5세대까지 안정적으로 기업을 승계했다.
특히 제도적 틀 안에서 합법적인 승계를 이뤄낸 점이 인상적이다. 이 교수는 "경영권 승계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면 기업의 지속성이 저해돼 결국 우리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대기업 승계를 원활하게 해줄 수 있는 제도적 환경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연도 제각각' 얽히고설킨 지배구조
승계는 상속 과정에서 맞물리는 복잡한 지배구조를 풀어내는 작업이다. 상속자는 승계 이후에도 경영권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완전히 경영권을 장악해야 사업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재계는 속속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다수의 국내 대기업들은 총수일가가 A→B→C→A 식의 순환된 지분구조(순환출자)를 통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대주주는 작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지만, 계열사 하나가 흔들리면 그룹 전체가 흔들린다. 정부가 대기업에 지주회사 체제를 요구하는 이유다.
현재 삼성그룹 순환출자 고리는 총 4개다. 실제 삼성은 삼성SDI가 보유중인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매각한 데 이어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매각을 앞두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총수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려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에 발목을 잡힌 상태다. 현재 정몽구 회장의 모비스 지분율은 7%이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지분이 없다. 정의선 부회장이 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선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모범기업'으로 꼽히는 LG그룹도 일감몰아주기는 풀어야 할 숙제다. LG의 대표적 친족기업 일감몰아주기 사례는 희성전자로,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들이 주요 주주다. 친족기업에 대한 내부거래 규제는 없으나 주력 생산제품의 60%가량을 LG디스플레이에 공급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S&C와 한화시스템 합병을 발표했다. 한화S&C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보유하던 업체로, 일감몰아주기의 대명사로 꼽혔다. 이에 한화는 지난해 에이치솔루션(존속법인)과 한화S&C(신설법인)로 물적분할하고, 에이치솔루션 한화S&C 지분(100%) 중 44.6%를 외부에 매각했다. 하지만 에이치솔루션의 지분(100%)은 여전히 이들 오너 3세가 보유하고 있어 '꼼수'란 지적이 있었다. 이번 한화시스템과의 합병 결정은 이런 지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km@fnnews.com 김경민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