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들에게
2018.06.19 17:10
수정 : 2018.06.19 17:10기사원문
1990년 6월 이때쯤,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김영애씨 그리고 박원숙씨와 함께 유럽여행 중이었다. 우리는 KBS 연말연기대상에서 상을 받았고, 그 부상으로 패키지투어팀에 섞여 유럽 6개국을 돌고 있었다.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하자 여행사 직원이 오줌싸개 동상 앞에서 말했다.
"고객님들께 사전 양해말씀 드립니다. 이번 여행에서 로마는 못 갈 수도 있습니다." 순간 선배 한 분이 일갈했다. "도대체 지금 와서 무슨 얘길 하는 거요. 로마를 빼면 그게 무슨 유럽여행이란 말이오." 겁먹은 가이드가 얼른 응답했다. "선생님, 두 가지 경우에 부득불 로마여행이 불가합니다." "그 두 가지가 뭐요?" "네, 지금 로마에서 월드컵 축구가 열립니다. 만약 이탈리아팀이 예선 탈락하면 불가합니다." "왜?" "로마 시내가 무정부 상태가 됩니다." "또 하나는?" "우승을 하더라도 무법천지가 되어 로마 관광이 불가합니다."
그날부터 김영애씨와 우리 일행은 이탈리아가 제발 예선 탈락하지 않기를, 제발 우승 못하길 기도했고 그 덕분인지 이탈리아가 3등을 해서 우리는 로마에 골인할 수 있었다.
축구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의 원초적 행위 두 가지로 구성된다. 키킹(Kicking)과 슈팅(Shooting), 이 둘은 축구의 알파와 오메가다. 발차기는 인간이 엄마 뱃속에서 행하는 최초의 생존투쟁이고, 알쏘기는 수컷의 종족 번성의 최종적 목표행위다. 골인 후 포효하는 액션은 정자를 사정한 수컷이 내지르는 승리와 정복의 상징적 표출이다. 축구는 이제 지구인에게 스포츠를 넘어 집단의 신앙의식으로 치환돼가고 있다. 국가와 국가 간, 도시와 도시 간 그들의 우월성과 정복성을 표출하는 대리전쟁이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첫 출전한 건 1954년 제5회 스위스 대회다. 인터넷에 떠도는 8분짜리 헝가리와의 후반전 장면을 보면 우리 선수들은 달리다가 한꺼번에 두세 명씩 쥐가 나 쓰러지고 만다. 알다시피 한국은 헝가리에 0대 9로 졌고, 터키에 0대 7로 졌다. 하지만 제발 불명예라 여기지 말자. 그 아픈 패배의 이면에는 승리보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우리 대표팀은 그해 6월 10일 서울에서 부산을 거쳐 도쿄로 가지만 비행기 티켓을 못 구해 두 팀으로 나뉘어 각각 태국과 인도로 향한다. 인도로 가던 팀은 캘커타에서 프로펠러 수리로 하루가 지체되었고, 태국행은 끝까지 티켓 2장을 못 구해 비행기표 때문에 월드컵에 못 간다는 말을 들은 영국인 부부가 양보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로마를 거쳐 스위스에 도착하는 데 무려 6일이 걸렸고, 경기 시작 하루 전이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지 채 1년도 안된 잿더미 속에서, 그들은 아시아에 최초로 배당된 티켓 1장을 놓고 일본을 5대 1과 2대 2로 물리쳐 온 국민의 응어리를 풀며 스위스로 달려갔다. 그들은 비록 쓰러지고 넘어졌지만 월드컵 마라톤을 완주한 용사들이다. 그날 그들은 비록 대패했지만 키킹과 슈팅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세계인이여! 아시아의 동쪽 끝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있다! 단군의 자손, 백의민족의 나라 대한민국을 기억하라! 36년의 압제와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지금은 비록 나약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다시 돌아와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나는 지금 '붉은악마' 셔츠를 입고 러시아의 태극전사를 응원하며 이 글을 쓴다. 붉은 악마들이여, 65년 전 우리 선배들의 패배를 단지 불명예라 생각지 말자.
이응진 한국드라마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