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구급대원에 주먹 휘두르는 '주폭'

      2018.07.11 17:03   수정 : 2018.07.11 17:15기사원문

#.1 지난 3월 23일 자정 무렵 서울 월드컵로 망원2치안센터에서 김모씨(56)가 난동을 부렸다. 김씨는 술집에서 종업원을 때려 현행범으로 체포됐으나 반성은커녕 수갑을 풀어주려던 경찰관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고 욕설을 퍼부었다.

#.2 지난 6일에는 서울 을지로 청계천 안 수풀에서 술에 취해 자던 이모씨(65)가 자신을 부축한 구급대원의 어깻죽지를 주먹으로 폭행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뺨까지 올려붙였다. 술에서 깬 이씨의 진술은 "기억나지 않는다"였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 소방 공무원들이 취객의 주먹질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막무가내로 폭행을 가하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이 빈번하지만 대응책이 마땅치 않아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이 같은 정상적인 공무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 행패, 성희롱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주취감형을 없애고 주폭(주취 폭력)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에 침뱉고, 구급대원 희롱

1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경찰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된 '주폭' 피의자 비율이 1994년 21%에서 2014년 78%로 20년 새 4배 가까이 폭증했다.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발생한 경찰의 공무집행 도중 부상을 입은 3240건 중 1064건(33%)은 주폭 난동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해 공무집행방해로 경찰에 입건된 1만2883명 중 주폭은 9048명으로 무려 70%에 달했다.

일선 경찰서 직원들은 만취한 주폭의 난동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박모 경장(34)은 "취객들이 파출소에서 침을 뱉거나 욕설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똥오줌을 싸놓기도 한다"며 "경찰관을 때리는 등 위법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욕하거나 소리 지르는 행위는 애매해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김모 순경(28)은 "유흥가 출동 시 일부러 녹음기를 켜고 나갈 때도 있다"며 "취객들은 이성을 잃은 상태라 힘을 써 제압하면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민원을 받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주폭의 난동이 두려운 것은 소방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1일에는 소방서 소속 강연희 소방위(51.여)가 취객을 구조하던 중 머리를 수차례 구타당한 뒤 어지럼증과 두통을 호소하다 결국 숨졌다. 한 구급대원은 "여성 대원들은 취객들에게 터치를 당하거나 성희롱적 발언을 듣기도 한다"고 전했다.

■"주취 감형 말고 증형 해야"

급증하는 주폭에 경찰과 소방당국은 주취자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거리가 먼 상황이다. 주폭에 대한 처벌 강도가 세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공무집행방해죄는 최대 5년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형, 소방기본법 위반죄는 최대 5년의 징역 혹은 5000만원의 벌금형에 각각 처해질 수 있다. 문제는 술에 취했을 경우 '심신미약'이 인정돼 감형의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초범은 대부분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치는 등 처벌의 효과가 전혀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소방대원은 "취객들은 '기억이 안 난다'며 범행 자체를 부인하고,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더라도 벌금형에 그친다"며 "엄벌한다고는 하는데 처벌 강도가 높아졌는지까지 체감은 못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위법 행위가 있으면 적극 체포하고 있지만 처벌이 약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주취감형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 온 '주취감형 폐지를 건의합니다'는 의견에는 총 21만6000여 명이 서명했다. 주취감형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 청원은 현재 100여 건을 웃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현행법에서 규정된 처벌의 강도가 낮은 수준이 아니지만 법원에서 대부분 벌금형 이하의 판결을 하는 등 처벌 수위를 낮게 판단한다"며 "주취 상태로 공무집행방해를 할 경우에 무조건 기소를 하고, 처벌도 대폭 상향하는 등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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