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2012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2018.07.21 16:17   수정 : 2018.07.21 16:58기사원문
2012년 9월 27일 4시경, 경북 구미시 구미4공단에 위치한 주식회사 휴브글로벌에서 두 명의 작업자가 탱크로리 차량에 실려 있던 화학물질을 공장 내 저장소로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뭔가 잘못됐고 순식간에 희뿌연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그 가스는 풀루오인화 수소 성분으로 일명 불산가스라 불리는 맹독성 물질이었다.

현장 작업자들은 그 즉시 손과 가슴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누출된 불산가스는 인근 마을 전체로 확산됐다.

이날 발생한 사고로 인해 사망자 5명, 사상자 18명 등 23명의 인명 피해와 약554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작업자들은 안전보호 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 인해 불산 원액이 누출되자 이송작업을 하던 작업자 2명과 탱크로리 하부에 있던 근로자 2명, 그리고 근처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까지 총 5명이 화상과 중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시행령 제16조, 시행규칙 제21조)에 따르면 불산과 같은 유독물을 연간 5000t 이상 제조하는 시설은 영업 등록 후 6개월 이내에 종업원의 안전교육 실태, 유독물의 성상에 따른 주의 사항과 응급조치 방법 교육 실태, 보호장비류 비치 상태와 작동 상태 등에 대해 정기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추후 조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해당 사업장은 안전·보건에 관한 특별 교육을 한차례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업장인 주식회사 휴브글로벌 구미공장은 2008년 연간 1만2000t의 불산제조업체로 등록했다가 이듬해 연간 4800t의 불산 제조업체로 변경됐다.

연간 유독물 제조량이 5000t을 넘지 않았으므로 그해 정기검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2010년과 2011년의 불산 제조량이 각각 5000t 이상으로 증가하게 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고 발생 당일까지 단 한차례도 정기검사가 실시되지 않았다.사고 신고가 접수되자 경찰관 6명과 소방관들이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사상자를 옮기고 현장 통제 활동을 수행했다. 경찰관들은 개인 보호 장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오후 4시 10분경 추가로 투입된 경찰관 60여 명이 도착했다. 이들은 그 즉시 교통을 통제하고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추가 투입된 경찰관들도 보호 장비를 갖추지 않았고, 사고물질이나 현장 상황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인력을 사고 지점으로부터 1.4km 밖으로 빼야 합니다. 불산은 맹독성 물질이에요.”
사고 발생 3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 즉시 경찰의 후속 조치가 이어졌지만 현장에 있던 36명의 경찰관들이 두통과 눈의 통증 등 이상 증상을 호소했고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소방관도 관련 보호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화학 보호복이나 개인 보호 장비가 부족해 일반 소방복을 입고 출동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온몸에 발진(피부나 점막 등에 작은 종기나 염증 등이 생기는 것)이 일어나고 기침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이가 속출했다. 당시 현장에서 화학 보호복을 입은 소방대원은 6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구미시는 인근 군부대에 화학사고 대응 인력과 제독장비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해당 군부대는 화학테러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화학사고에 대비해 특수화학분석차량을 보유한 곳은 인천에 있는 국립환경과학원이 유일했다. 이들은 현장 지원 요청을 접수한 후 신속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지역까지 도착하는 데만 8시간이 소요, 이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누출된 불산가스가 주변 지역까지 넓게 확산된 후였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현장에 있던 대응 인력들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 분투했다. 하지만 제독제로 사용할 소석회(수산화칼슘)가 부족해 제독 작업이 지연, 중화되지 못한 불산가스는 점점 더 확산됐다.

사고 당일 오후 7시, 당시 소방방재청과 행정안전부는 초동대응을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관계 기관 간 협조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때문에 제독 작업이 지연되고 현장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총괄·조정 기능이 원활하게 수행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환경부는 대응 매뉴얼상에 기재된 주민 복귀를 위해 구미시에 필요한 사고 대응 정보를 적시에 알려주지 못했다. 구미시 또한 환경부가 위기경보 ‘심각단계’를 해제하자, 이를 근거로 제독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 현장에서 철수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사고 당일 밤 10시 36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을 통해 구미 불산가스 유출 사고와 관련해서 환경부가 위기경보 ‘경계단계’를 발령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 신속한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르면 위기경보 ‘경계단계’가 발령되면 보건복지부는 현장에 응급의료소 설치와 의료 활동 지원을, 고용노동부는 사고 현장 수습 활동과 전문 인력 기술 지원을 검토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각 부처의 재난관리 담당자들은 표준매뉴얼에 명시된 임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미시는 2차례에 걸쳐 인근의 군부대로 사고 수습 인력과 제독 장비를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한결 같았다.

“화학테러가 아니기 때문에 지원이 힘들겠습니다.”
이 부대는 경상북도와 재난안전대책본부의 지원요청이 접수되면 가용 능력 범위 내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재난 협력에 관한 협정이 맺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구미시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고, 이러한 사실을 국방부 등 상급 기관에 알리지도 않았다.

사고 당시 각 기관들은 「화학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라대응방안을 강구했다. 당시 매뉴얼에 따르면 화학물질사고의 주관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은 모두 3곳(환경부, 고용노동부, (구)지식경제부)이었다. 이처럼 주관기관이 많다 보니 상황판단의 주체와 절차가 모호해 많은 혼란이 발생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에서는 사고 발생 다음 해인 2013년 3월 기존 표준매뉴얼을 개정했다. 화학사고 발생 시 해당 물질을 관리하는 소관부처가 주관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되, 부처간 소관이 중첩되거나 불분명한 경우에는 환경부를 중심으로 대응·수습체계를 일원화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이 있을 경우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조정하도록 했다.

당시 구미시에는 2008년 3월에 작성된 「환경오염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이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이 매뉴얼에는 수질오염 사고에 대한 대응 요령만 규정돼 있었고, 이번 사고와 같은 대기 오염 사고에 필요한 대응(피해 확산 범위와 주민 대피 등에 관한 대응 방안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구미시는 사고발생 약 3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주민들을 피해 확산 범위 밖으로 대피시키는 등 사고수습에 많은 혼선이 발생했다.

불산가스는 짧은 시간 노출되어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토양, 지하수 등을 오염시키고 농작물 피해까지 유발한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는 대기 중의 불산가스 농도 측정을 사고 지점과 인근 마을회관에서만 간이검사 방식으로 실시하였다. 구미시 또한 다음날 4시 30분 사고 상황 종료를 선포할 때까지 수질과 토양, 식물에 대한 잔류 오염도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대구지방 환경청의 「화학 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대응 행동매뉴얼」에 따르면 화학물질 유출 시 자체 위기 평가 회의를 거쳐 위기경보를 발령 또는 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 매뉴얼에서는 상황 종료 판단과 주민 복귀 여부를 사고 현장의 인명 구조, 제독 작업, 잔류 오염도 조사 등을 모두 완료한 후 결정하도록 기재돼 있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는 사고 탱크로리의 누출 부위를 차단해 더 이상의 추가누출이 없고 주변 지역과 인근 주거 지역을 탐지한 결과 불소가 검출되지 않자 위기경보 심각단계를 해제했다. 구미시 역시 환경부의 조치에 이어 사고 인근지역의 대기 중에 불산가스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주민 복귀를 결정했다.

그러나 사고 종료 6일 후부터 인근 지역의 농작물이 고사한 것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불안한 주민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불산가스의 잔류 가능성이 제기됐다. 결국 지자체와 관계 기관은 10월 6일, 주민들을 다시 대피시키는 등 수습 단계에서 많은 혼선을 빚어야 했다.


이후 정부는 화학물질과 관련된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전담기구를 신설, 화학공장이 밀집된 6개 주요 산업단지에 합동방재센터를 설치해 운영하는 등 국내 화학물질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응태세를 갖춰 나가고 있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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