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 사람들이 만든 ‘토마토 축제’를 가다

      2018.08.04 14:05   수정 : 2018.08.04 15:22기사원문
【화천=서정욱 기자 】사람들은 8월의 태양을 닮은 빨강색 야채나 과일하면 토마토를 떠올리게 된다.

그 빨강색깔이 8월에 더 어울리는 축제가 있다. 이 축제는 해발 800m 내외의 고랭지밭에서 화천사람들이 생산한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축제이다.



8월의 첫 주말이 시작되는 3일 오후. 토마토축제가 열리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골짜기로 가는 길에는 차량행렬이 줄을 이었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춘천댐이 있는 북한강 강변을 따라 30여 분을 달리면 토마토축제가 열리는 마을에 주둔한 군부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 또 하나의 언덕을 넘으면 양 골짜기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는 아담한 마을 풍경이 반갑다.

이날 오후 1시. 태백산맥 중북부 접경마을 화천 사내면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청한 하늘아래 트럭으로 실어온 수많은 토마토들이 뿜어대는 토마토 향이 물씬 풍긴다.

전방 사단병력의 군부대가 주둔한 강원도 접경지 마을. 군부대 장병 면회를 오는 가족들 아니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없던 이 산촌 군부대 마을이 토마토축제마을로 변신한 건 오래되지 않는다.

지난해 축제에 이어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사내면 토마토 마을을 찾았다. 점심 시간을 지나친 탓에 나는 사내면 마을의 한 중국집에서 볶음밥으로 때늦은 점심을 먹었다.

한 개면에 두 개의 사단병력이 주둔한 접경마을 답게 중국집에는 장병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난 해 이맘때 점심을 먹을 때는 핵문제로 불안했던 화약고 같았던 텔레비전 뉴스가 1년만에 평화로운 뉴스로 진행되는 것을 보며, 전쟁을 막기위해 주둔한 병사들이 사는 이 국경선 마을에 싹트는 또다른 평화의 냄새를 8월의 볶음밥을 먹으며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해 나는 이 마을을 방문하며 ‘토마토 전쟁’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러나 접경지 군사분계선이 맞닿은 이 마을에서 점심을 먹으며, 오늘 나는 ‘평화를 만드는 토마토’를 상상한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 오후 2시 30분. 나는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 축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제장을 들어서자 토마토 향기가 분수처럼 뿡뿡 코끝을 비빈다.

축제장에는 토마토축제를 즐기려는 가족관광객들이 유난히 많다.

아이들이 토마토밭이 아닌 토마토 위에서 폴짝폴짝 뛸 때마다 토마토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터진 토마토의 즙이 흥건히 강물처럼 적셔지자 빨강색깔 토마토 물방물이 아이들의 발끝에서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행복하다. 아마도 이날 토마토축제장을 찾은 가족과 아이들은 그런 8월의 행복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8월의 금요일. 아이들이 토마토 속으로 들어가 토마토 요정이 된다. 쏟아진 빨갛게 익은 토마토와 함께 터지는 사람들의 탄성. 토마토가 아이들 머리위로 풍선처럼 날아간다.

아이들의 얼굴과 온 몸에 빨강색 토마토가 물들고, 축제장 곳곳에서 물보라가 분수처럼 뿌려진다. 토마토에서 나온 물과 안개 같은 물알갱이들이 범벅이된 아이들의 얼굴 표정은 동화 속 토마토나라 아이들 같다.

펭귄처럼 총총 걸음으로 토마토 위로 질주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걸음에 투두둑 터지는 토마토의 즐거운 비명들. 8월의 접경지 마을은 분단의 화약 비린내 대신 토마토를 던지는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에서 손과 발이 하나되어 미끄러져 갔다.

그리고 오후가 더 쨍쨍거릴 무렵. 토마토를 밟으며 즐기던 아이들이 거리에 만든 샤워장으로 우르르 몰린다.

8월의 더위가 다 날라 가는 토마토 축제장. 축제 문화 변화의 힘은 크다.

지난 해만 해도 토마토를 던지는 사람들을 보며 ‘토마토 전쟁’을 그렸던 나는 ‘토마토가 만들어낸 평화’가 화약냄새가 가시지 않은 이 접경지 마을에 토마토 향기를 뿌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그래서 이런 8월의 행복한 축제를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만들어준 화천사람들이 고마웠다.

이 축제를 모르는 대부분 사람들은 왜 비싼 토마토를 저렇게 소비하느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 쪽방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먹지도 못하는 토마토를 놀이용으로 버리는 것이 못마땅 할 수도 있다.

나역시 이 축제를 보기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이 준 토마토의 맛이 주는 향기 외에, 또다른 행복의 소비로 팍팍한 삶을 사는 도시인들에게 행복을 준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토마토 소비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뜨거운 불볕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는 분단 마을의 오후를 보며 , 이 마을의 토마토축제보다 역사가 오래된 스페인 발렌시아 부뇰마을의 토마토 축제를 떠올린다.

1932년 투우축제가 금지되면서 더 이상 축제를 즐길 수 없었던 부뇰마을 사람들에게 활기를 되찾아 준 건 ‘토마토축제’ 였다.

스페인 사람들이 만든 부뇰 마을의 토마토 축제는 토마토가격 폭락때문에 마을사람들이 시의원들에게 토마토를 던지며 시작되었다 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45년 마을 광장의 고적대 가장행렬에 끼어든 행인과 가장행렬 집단 간의 충돌 때 누군가 마을 거리 상가에 진열된 토마토를 서로 던지면서 토마토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또다른 유래가 있다.

그러나 스페인 토마토 축제가 시작된 건 마을청년들이 토마토 장례식을 거행하면서라고 한다.

3일.낮.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그 분단의 국경선이 가장 가까운 접경지 마을 화천사내면에서 핵폭탄 대신 토마토를 던지며, 평화를 만드는 토마토축제가 언젠가 남과북의 가족들이 이곳에서 8월의 행복을 함께 즐기기를 기대하며, 나는 토마토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나눠주는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000인분의 파스타를 만드는 화천사람들. 이번 축제를 준비한 최문순 군수는 토마토 소스를 비비며 토마토마을의 축제를 관광객들과 함께 나누고 있었다.

강원도 토마토의 맛. 그리고 접경지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소통을 담은 한 컵의 파스타가 축제장을 더 아름답게 소통시키고 있었다.

토마토 소스를 부어 만든 파스타에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맛있는 토마토의 오후식사가 이뤄졌다.

이런 광경은 스페인 부뇰마을처럼 마을의 거리 건물들이 비닐을 치고, 토마토 전쟁을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이 토마토를 재배해 축제를 만든느 화천 사람들과 토마토를 통한 8월의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축제는 축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마을의 축제가 스페인 부뇰마을 토마토 축제처럼 좀 더 자연그러워져야 한다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내가 그런 상각을 하는 사이. 한 어린 소녀가 토마토 위를 뛰어간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 나는 이 아이들이 이 축제를 빛내는 작은 요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생각을 동화 같은 상상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접경지 마을의 토마토 축제가 부뇰처럼 되기 위해서는 저런 자연스러움이 필요하다.


총을 든 화약 냄새가 나는 분단된 국경마을에 토마토 요정 옷을 입은 동화 속의 토마토 요정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마을 거리 곳곳 건물들에서 토마토 빵, 토마토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셰프가 후라이팬에서 요리되는 그날을 생각하며, 저문 오후 토마토마을을 빠져나와 춘천으로 가는 국도를 달렸다.

syi23@fnnews.com 서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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