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vs 기업가
2018.08.14 17:00
수정 : 2018.08.14 17:00기사원문
사람들이 문제를 보는 혹은 상황을 판단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래서 자연과학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는 현상들이라면 몰라도, 사회적인 문제나 상황을 놓고는 다양한 다른 의견들이 나오는 것이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그 다름의 극단이라 할 수 있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참으로 메우기 힘들다는 점은 모두가 실감하고 있는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가들 사이의 의견의 간극이 커지고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가들과 기업가들 사이에도 의견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기업가정신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지만, 여하튼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대체로 미래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동태적인 시각이다. 기업가들이 투자라는 행동으로 옮기는 기준은 아무래도 현재(혹은 과거)보다는 지금으로부터 전개될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미래는 항상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해 돈이나 시간을 투입하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하는 데 비해 기업가들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 결과로 많은 기업가들이 실패와 파산의 늪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소수의 성공적인 사람들은 큰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가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슘페터나 나이트 같은 학자들이 잘 분석하고 있는데, 이들 학자들은 기업가들이 누리는 이익은 대부분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한 대가이며 그것도 추격하는 다른 경쟁자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위험할 뿐만 아니라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쓴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기업가들이 얻는 이익은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배가 아플 정도로' 지나치게 큰 것으로 비쳐지게 된다.
반면에 정치가들의 시각은 정태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정치가들은 지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나 분야를 찾아 거기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과거로부터 쌓인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도 힘쓴다. 표를 얻어야 집권을 하는 현대 정치의 속성이라 치부하기 쉽지만, 왕조시대에도 이러한 정치가의 속성은 여실히 드러났던 것 같다. 이른바 탕평책이라는 이름의 정책들을 내건 왕들이 적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렇게 정태적인 시각을 가진 정치가들의 눈에는 성공한 기업가들이 누리는 큰 이익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대상으로 보이기 쉬운 것이다. 일반 사람들의 배 아픈 시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국가가 운영돼 가는 방식은 이들 두 시각을 조정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경제를 운영하는 관점에서는 그렇다. 동태적인 시각을 가진 기업가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애쓰는 것을 강조하면 성장과 발전이라는 과실은 더 많이 얻을 가능성이 커지지만 그 결과로 많은 사회적인 불균형과 그에 따른 갈등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 불균형과 갈등을 수정하기 위한 정태적인 시각을 가진 정치가들의 시각이 지배하게 되면 성장과 새로운 산업발전을 희생해야 할 위험을 안게 된다.
어쩌면 여기에서 '정책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관료, 전문가, 더 넓게는 언론, 시민단체 등이 기업가와 정치가의 대립적인 두 시각의 적절한 믹스를 권고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도 마키아벨리와 같은 뛰어난 정책가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뛰어난 정책가들이 아닐까 싶다. 정치가의 시각이 팽배한 시점에서 그러한 시각을 적절히 받아들이면서도 기업가들의 동태적 시각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줄 그런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