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딸이 유일하게 살아줘 68년만에 만나요" 이산상봉 기구한 사연들

      2018.08.15 13:04   수정 : 2018.08.15 19:42기사원문

"북측에 딸이 지금까지 살아줘, 이렇게 만나게 돼 감사해요"며 "걔가 유일하게 살아서 상봉을 하게 된거니까요.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줘서 진짜 고마워요"
89세 황우석씨는 8·15계기 20~26일 금강산에서 개최되는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북측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딸을 만나러 간다.

'오래 산 보람이 있다'는 황씨는 여동생 셋도 북한에 있었는데 모두 사망했다고 했다.

이어 "딸은 고향을 떠날때 3살이었는데 68년이 지나 지금 71세"라며 "내 혈육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번에 외손녀(39세)를 데리고 온다고 해 이번에 혈육 상봉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1·4 후퇴때 남쪽으로 내려와 3개월만 피난을 하고 고향에 돌아가자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68년이 됐다고 했다.

황씨는 "한국만 지금 유일하게 분단국가 아닙니까"라며 "빨리 통일이 돼 왕래도 하고 서신 연락도 하고 전화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를 비롯해 남측 이산가족상봉 행사 참가자 93명은 오는 20일 금강산에서 북측의 가족을 만난다. 6·25전쟁으로 헤어진 지 68년 만이다.

■이산상봉 신청 30여년만에 만남
박기동씨(82세)는 "남동생이 2살, 여동생이 6살 때 헤어졌다"며 "동생들은 너무 어릴 때 헤어져 잘 못알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80년대 직장 다닐 때 마포구청에 최초로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해 30여년만에 만날 수 있게 됐다.

박씨는 전쟁 당시 서울 배제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부모님과 셋째·다섯째 동생은 북측에 살고, 첫째인 박씨와 둘째·넷째 동생은 남쪽에 살았다.

박씨는 "남동생은 왼쪽 이마에 반점 비슷하게 튀어나온 게 있었다"며 "여동생은 어렸을 때 서양사람 비슷하게 생겨 소련 여자라고 '로스키'라고 놀리곤 했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부모님들이 언제 돌아가셨는지", "묘지는 어디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말도 못한다"며 "우리가 열심히 살긴했는데, 만나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한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30여년전 처음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할 땐 박씨가 50대였는제 지금 82살이 됐다.

■"북쪽 가족 소식 68년만에 들어"
77세 이수남씨는 큰형 리종성씨를 만나러 간다. 이씨는 큰형 사진 2장을 갖고 있는데 한 장은 10대 때 증명사진, 한 장은 동네어른들과 찍은 빡빡머리에 셔츠 차림의 사진이다.

이씨는 "큰형님 소식을 68년 만에 들으니까 그냥 멍했다가 눈물이 막 나왔어요"라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복받치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6·25전쟁 때 북한이 병력을 만들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을 서울 시내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집합시켜, 어머니가 가셔서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졌다고 했다.

이씨는 "이번에 면회하니까 영광이지만은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지 않나"라며 "나이를 먹어가니 마음이 착잡하다.
영구적으로 상설면회소라도 생긴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한편 2년10개월만에 재개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오는 20일~22일, 23일~26일 금강산에서 두차례 열린다.
1차에는 남측 상봉단 93명이 북측 가족들과 만나고, 2차에서 북측 상봉단 88명이 남측 가족을 만난다. lkbms@fnnews.com 공동취재단 임광복 기자
영상=양문선 기자




lkbms@fnnews.com 임광복 양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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