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상봉 앞둔 89세 아버지 "71세된 딸 살아줘서 고마워"

      2018.08.15 17:14   수정 : 2018.08.16 07:34기사원문
"북측에 딸이 지금까지 살아줘, 이렇게 만나게 돼 감사해요"며 "걔가 유일하게 살아서 상봉을 하게 된거니까요.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줘서 진짜 고마워요"

89세 황우석씨는 8·15계기 20~26일 금강산에서 개최되는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북측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딸을 만나러 간다.

'오래 산 보람이 있다'는 황씨는 여동생 셋도 북한에 있었는데 모두 사망했다고 했다.

이어 "딸은 고향을 떠날때 3살이었는데 68년이 지나 지금 71세"라며 "내 혈육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번에 외손녀(39세)를 데리고 온다고 해 이번에 혈육 상봉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1·4 후퇴때 남쪽으로 내려와 3개월만 피난을 하고 고향에 돌아가자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68년이 됐다고 했다.

황씨는 "한국만 지금 유일하게 분단국가 아닙니까"라며 "빨리 통일이 돼 왕래도 하고 서신 연락도 하고 전화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를 비롯해 남측 이산가족상봉 행사 참가자 93명은 오는 20일 금강산에서 북측의 가족을 만난다. 6·25전쟁으로 헤어진 지 68년 만이다.

■상봉 신청 30여년만에 만남

박기동씨(82세)는 "남동생이 2살, 여동생이 6살 때 헤어졌다"며 "동생들은 너무 어릴 때 헤어져 잘 못알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80년대 직장 다닐 때 마포구청에 최초로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해 30여년만에 만날 수 있게 됐다.

박씨는 전쟁 당시 서울 배제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부모님과 셋째·다섯째 동생은 북측에 살고, 첫째인 박씨와 둘째·넷째 동생은 남쪽에 살았다.

박씨는 "남동생은 왼쪽 이마에 반점 비슷하게 튀어나온 게 있었다"며 "여동생은 어렸을 때 서양사람 비슷하게 생겨 소련 여자라고 '로스키'라고 놀리곤 했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부모님들이 언제 돌아가셨는지", "묘지는 어디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30여년전 처음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할 땐 박씨가 50대였는제 지금 82살이 됐다.

■"北가족 소식 68년만에 들어"

77세 이수남씨는 큰형 리종성씨를 만나러 간다. 이씨는 큰형 사진 2장을 갖고 있는데 한 장은 10대 때 증명사진, 한 장은 동네어른들과 찍은 빡빡머리에 셔츠 차림의 사진이다.

이씨는 "큰형님 소식을 68년 만에 들으니까 그냥 멍했다가 눈물이 막 나왔어요"라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복받치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6·25전쟁 때 북한이 병력을 만들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을 서울 시내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집합시켜, 어머니가 가셔서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졌다고 했다.

이씨는 "이번에 면회하니까 영광이지만은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지 않나"라며 "나이를 먹어가니 마음이 착잡하다.
영구적으로 상설면회소라도 생긴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한편 2년10개월만에 재개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오는 20일~22일, 23일~26일 금강산에서 두차례 열린다.
1차에는 남측 상봉단 93명이 북측 가족들과 만나고, 2차에서 북측 상봉단 88명이 남측 가족을 만난다.

공동취재단 임광복 기자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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