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이 키운 ‘온라인 신상털기’… 정의구현일까?

      2018.09.11 17:20   수정 : 2018.09.11 17:30기사원문

#1 지난 6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성범죄자가 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남편이 면식 없는 여성과 식당에서 부딪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추행 혐의로 실형 6월을 받았다는 것이다. CC(폐쇄회로)TV가 공개된 이후 해당 사건을 선고한 판사의 신상이 공개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관련 내용의 서명이 20만명을 돌파했다.



#2 온라인 커뮤니티로 인해 2014년 음주운전 사건이 재점화된 사건도 벌어졌다. 인터넷에는 20대 아우디 차주가 음주운전으로 글쓴이의 아버지를 들이받았고 이로 인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차주가 합의 없이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차주와 부모에 대한 신상털이가 성행했다. 결국 차주의 부모가 운영하던 식당은 신상털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폐업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정의구현'이라 불리는 '신상털기'가 성행하고 있다.

제도상 정의를 구현해야 할 사법부가 신뢰를 받지 못해 온라인에서 처벌이나 구제를 대신해야 한다는 방식이지만 전문가들은 과도한 신상 공개가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온라인 공동체 의식 확산

11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네티즌 등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보면 신상 공개는 일부 몇 사례로 국한되지 않는다. 당사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내용을 올리고 이에 공감하는 일부 누리꾼들이 '가해자'에게 온갖 공격을 가하는 방식은 이미 성행하고 있다. 최근에도 '인천 송도 불법주차 사건'의 당사자인 캠리 차주인 50대 여성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정의구현이나 신상털기를 위한 만들어진 사이트도 있다. 필리핀 여성과 교제해 아이를 낳은 뒤 '나 몰라라'하고 떠난 한국 남성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에는 남성 사진과 이름 등이 올라와 있다. 사이트에 올라온 코피노 아빠는 총 66명. 이 중 40명은 사이트를 통해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해왔고, 대부분은 양육비 지급 등을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신상 공개가 넘쳐나게 된 배경으로 무분별한 온라인 공동체라는 특수성이 거론되고 있다.

송재룡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 공동체가 수평적으로 확산하면서 개인 정보도 여기저기에 노출돼 있다"며 "온라인 공동체가 형성되기 전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황의갑 경기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02년 월드컵, 촛불집회 등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다수가 동참하는 경험을 하면서 공동체가 해결하려는 문화가 강하다"고 했다.


■사법부 불신도 '한 몫'

사법기관의 불신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사법 시스템 신뢰도에서 우리나라는 42개국 중 39위였다. 최근 '사법농단' 파문으로 신뢰도는 더욱 낮아지고 있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는 법을 제대로 지켜 사법 정의가 실현되는 전통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그러다 보니 법 집행에 답답함을 느끼고 먼저 나서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법 집행이 더욱 더 엄격하게 집행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신상털기는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2015년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원생 폭행 사건 당시에는 가해자가 아닌 엉뚱한 사람의 이름과 사진, 전화번호 등이 공개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신상 공개로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 교수는 "'시민의 힘'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신상털기로 자긍심을 얻을 수 있겠지만 '시민'으로서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유아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