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조종사 양성 현장을 가다... TA-50 전투기 타보니
2018.09.26 16:07
수정 : 2018.09.29 16:35기사원문
'파일럿'이라 하면 현대전에서 전쟁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인 전투기를 몰고 적진을 날아가 정확하게 타격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조종사는 지구 중력의 몇 배를 넘나드는 극한의 환경에서 수많은 전자 및 기계 계통이 결합된 전투기를 다뤄야 하고, 전투 상황에 맞게 빠른 의사결정도 내려야 한다. 그만큼 조종사가 되기 위한 과정은 힘들고 어려우며, 실전 조종사가 되고 나서도 강인한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뒤따른다.
■ 공대공·공대지부터 기동전술까지... TA-50 항공기 타보니
"방태산 휴양림, 대지 공격 들어갑니다" 윤상호 조종사(공군 대위)의 말이 떨어지자 TA-50 항공기가 방향을 선회한다. 계기판을 보니 중력가속도 6.5G, 속도는 410노트(759km/h)였다. '지슈트'(G-Suit)에 공기가 들어오면서 다리와 복무에 압박이 가해지고 숨이 가빠 왔다.
기자는 지난 6일 예천 공군 제16전투비행단 115전투비행대대를 찾아 조종사 전술입문훈련과정(LIFT)을 체험했다. 전날 공군의 협조 아래, 충북 청주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항공우주의학 훈련센터에서 비행에 필요한 각종 훈련을 마쳤다.
조종사의 하루 일과는 브리핑에서 시작된다. 비행대장은 이날의 비행시간과 항로의 기상 상황, 훈련 대비 시나리오 요건, 임무 등을 조종사에게 전달한다.
이날 오전 11시, 김원식 115대대 비행대장(소령)이 굳은 표정으로 브리핑했다. 그는 "찰리 편대는 STATION(이륙시간) 오후 1시 40분에 적아식별(피아 구별)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방어 제공(공중에서 침투하는 적기를 격추하는 것)의 임무를 수행하라"고 말했다. 또 그는 "수도권 점령을 위해 대규모 적이 남하를 하고 있다. 지상군 지휘관이 적군 집결지에 폭격을 요청했다. 브라보 편대는 MAK-180을 약 150kg을 싣고 공대지 공격으로 적의 이동을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비행 훈련을 앞두고 만든 가상의 시나리오다. 공군은 실전과 가까운 훈련을 시행하기 위해 매번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두 대의 항공기가 한 편조를 이뤄, 적기와 우군기 역할을 맡거나 가상의 표적지를 설정해 훈련하고 있다.
이번 훈련의 과정은 각 편조 별로 전술출항→기본전투기동→전술요격→대지 공격 순으로 진행됐다.
오후 1시, TA-50 항공기가 이글루(항공기 격납고)를 빠져나온다. 항공기가 사람을 지날 때마다 윤 대위는 수화에서 '사랑'을 뜻하는 손가락 엄지, 검지, 새끼 펴 보였다. 공군은 각 부대마다 안전을 뜻하는 손 표식이 있다. 그날의 안전한 비행을 비는 일종의 의식이다.
활주로 진입 직전 마지막 항공기 점검 과정을 거쳐 드디어 이륙이다. TA-50이 창공에 날아오른다. 순간의 중력에 말문이 막혔고, 곧이어 펼쳐진 하늘에 넋을 잃었다. 윤 대위가 "이상 없습니까?"라고 물어 왔다. 복좌식 TA-50은 전방에 주조종사가 타고 후방 부조종석에서 훈련 조종사가 탈 수 있다. 서로 간의 대화는 헬멧에 연결된 장치로 무리 없이 대화가 가능하다.
비행한지 얼마 안 돼 영주, 단양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본전투기동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존전투기동은 우리 아군기가 유리한 상황에서는 빨리 적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이동해야 하고, 불리한 상황에는 살아남기 위해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때 항공기는 빨리 방향을 바꾸기 위해 항공기를 트는데 회전의 각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동성능이 작고 선속이 늦어진다. 반면 회전의 각이 작아질수록 기동성능이 높고 선속이 빨라진다. 그만큼 조종사에게 받는 중력도 크다. 회전각이 작아질 때 받는 최대 중력은 6~7G에 이른다. 평소 우리 일상생활의 중력이 1G이므로 최대 7G까지 올라갈 때는 '블랙아웃'과 같은 극한의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이를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지슈트다. 지슈트는 큰 중력이 가하질 때 신체의 혈액이 순간적으로 하체에 쏠려 두뇌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체와 복부 등에 공기 압력이 팽창한다. 조종사들은 3년에 한 번씩 비행환경 적응훈련 'G-테스트'에서 6G를 견뎌내야 한다.
항공기가 반쯤 뒤집어 선회하자 지슈트가 부풀어 올랐고, 기자는 중력저항호흡방식(AGSM)을 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기도를 막기 위해 내는 '윽', 들이마신 숨을 내뱉기 위해 '크흐'를 반복했다. 이륙할 때 느낀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정신이 아찔하다.
항공기가 1만8000피트에 올라가자 대류권계면에 다다랐다. 구름이 기자 발아래 깔려있었다. 순간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 든다.
이후에도 G훈련은 몇 차례 계속됐다. 윤 대위는 "전반적인 기상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라면서 "잘 버티시네요. 조종사를 해도 되겠습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항공기가 급하강을 하면서 방태산 자연휴양림을 가른다. 대지공격이다. 이때쯤 찰리1 항공기가 보였다. 자신이 탄 항공기에선 속도를 체감할 수 없었지만, 찰리1 항공기를 보니 너무나 빨랐다.
귀환하는 길, 계기판에서 지상의 사진이 떴다. 이는 TA-50에 탑재된 합성대지개구레이터(SAR 레이더)를 통해 지상의 타격지를 촬영한 것이다. 공격 기동 단계에서 지상 표적을 촬영하고 폭탄을 투하하는 훈련이다. 보통은 중앙항공통제소(MCRC)에서 모든 정보를 전달해주지만, 최근엔 항공기 성능이 뛰어나 한 번 더 육안으로 확인하고 나서 폭격한다.
이후 찰리1과 찰리 2는 서로 간의 항공기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 한 항공기는 작전 임무를 마치고 다시 예천공항으로 귀환했다. 윤 대위는 "서로 간의 교차비행으로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라면서 "비상시에는 예천기지로 귀환하지 않고 가까운 기지로 착륙할 때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착륙과 동시에 안도감, 피로감 그리고 조종사에 대한 존경심까지, 만감이 교차했다. 이와 같은 비행훈련을 하루 두 번씩 하려면 조종사의 체력유지가 정말 중요하다 느껴졌다.
윤 대위는 "오늘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라면서 "공군은 우리 영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이 임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거쳐 간 후배 조종사를 볼 때마다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전했다.
■ 조종사 양성의 요람 '16전비 115대대'
공군 사관생도들이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면 네 가지 과정을 거친다. 먼저 1단계 입문과정, 2단계, 기본과정, 3단계 고등과정 그리고 마지막 4단계 전투기입문과정(LIFT)이다. 이중 4단계 전투기입문과정은 훈련기 조종을 마친 조종사들이 최신예 전투기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이다. 통상 조종사들은 전시 실전비행 5회 안에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때문에 고등과정을 수료한 조종사들이 안전하고 통제된 상황에서 실전경험을 쌓아 실전에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115대대는 2012년부터 TA-50 전투입문 훈련기를 가지고 실질적인 전투기술을 배양시켜 영공수호를 위한 정예 조종사를 양성해오고 있다. 특히 통합훈련 관리체계(TIMS·Training Integrated Management System)을 통한 지상교육 훈련대에서 전술임무에 대한 학술교육과 시뮬레이터 훈련을 거친 뒤, 항공기 이·착륙, 공대공·공대지 사격(BVR 무장 훈련), 레이더 운용 등 각종 비행이론과 전술과목을 21주에 걸쳐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배출된 조종사만 올 4월까지 약 200명(연간 80여명)에 이른다.
TA-50은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과 대등한 전투기동 성능과 공대공·공대지 무장운용능력을 보유한 T-50 계열의 항공기다. '전투기입문과정'을 위해 탄생된 기체로써 기동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디지털 비행제어 시스템(DFCLL)을 탑재하고 있고, 초음속 기동에 충분한 추진력을 가진 F404-GE-102 엔진과 견고한 기체구조 등 최신예 전투기들과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은 경력한 비행성능을 가진 훈련기다.
윤형노 16전비 정훈공보 장교(소령)은 "LIFT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TIMS를 운용한 결과, 조종사들의 양성 기간이 7개월가량 줄었다. 그럼에도 기존 체계 수료자보다 학술지식, 모의비행 장치, 비행훈련 측면에서 오히려 높은 수준의 교육효과를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115대대에서 배출한 조종사 중에는 이라크, 필리핀, 태국 공군과 같은 해외 조종사들도 있다. 한국항공우주(KAI)에서 개발된 T-50 계열 항공기는 그동안 인도네시아·이라크·필리핀·태국 등 총 4개국에 수출된 상태다. 따라서 115대대가 지난 2013년부터 T-50 계열 항공기를 도입한 해외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비행 및 시뮬레이터 등의 수탁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외국군 조종사가 이곳을 거쳐간 인원은 33명이며, 오는 10월부터 태국 조종사를 대상으로 TA-50 수탁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 기술로 만든 우리 항공기들이 세계의 하늘을 날아 다니며 맹활약하는 것에 이어서 외국군 수탁교육까지 전담하는 우리 공군의 높은 신뢰도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