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명작, 홍천은행나무숲을 가다

      2018.10.08 07:20   수정 : 2018.10.08 07:20기사원문
【홍천=서정욱 기자】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10월’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노오란 은행나무숲’이 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I.C를 빠져나와 깊어가는 가을 골짜가를 1시간여 달렸다.

해발 750m, 홍천 내면 광원리 골짜기 물이 흘러내리는 물가 옆에 은행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은행나무들의 고향 같은 나무들이 파아란 가을하늘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7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찾은 이 숲은 사람이 가장 살기 좋다는 해발 700m의 숲에서 두 번재 노란 풍경을 보여주었다.

지난 해 나는 내가 읽었던 프로스트의 시 ‘가지않은 길’을 떠올리며 내가 가지 않은 길 중에 한 곳으로 이곳을 가지 않고 남겨둔 숲길이라고 생각했다.


-노오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어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 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생략)

-프로스트의 시 ‘가지않은 길’ 중에서.



이 은행나무들이 사는 숲의 주인은 1년 동안 자란 은행나무 숲을 10월 한 달만 사람들에게 꺼내 놓는다 고 한다.

해발 750m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 하나를 건너면 은행나무 숲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그 두 개의 길에서 왼쪽으로 5분정도 걸으면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노란 옷을 입은 피오노키오의 목각 같은 인형들이 살 것 같은 은행나무들이 빼곡한 군락을 이룬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은행나무를 만나는 오솔길에는 스마트 폰을 들고 이 풍경을 담으려는 사람들의 미소가 모나리자가 같다.

이런 노오란 숲은 내어 준건 사랑하는 아내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이 숲으로 들어와 숲의 친구처럼 살며 은행나무를 심어 온 부부의 수고로움이 녹아있다.

나는 이 숲을 보며 내가 꽤 오래전에 읽은 동화 ‘나무를 심은 사람’을 생각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엘제아르 부피에는 양치기이다. 그는 알프스산맥이 뻗어 내린 프로방스 지방의 황무지에 나무 하나 하나를 평생 심어 숲으로 바꿔 놓은 정말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의 수고로움이 알프스 산으로 사람들을 다 시 불러 모으고 마을을 다시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양치기 한사람이 가꾼 숲의 노력을 나는 홍천 내면 광원리 깊은 골짜기 은행나무 숲에서 다시 떠올렸다.

이 은행나무 숲의 주인의 수고로움이 나무와 사람들의 소통을 불러 오고 있었다,

도시의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아이들에게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닯은 이름모를 주인이 심은 은행나무를 만나며 행복한 웃음을 가을하늘 높이 던지는 사람들을 보는 나 또한 행복하다.

사람들보다 지구에 더 먼저 와 지구의 주인이 된 나무. 그 나무가 은행나무이다. 식물 사전을 찾아보니 2억7000만 년 전 공룡과 함께 탄생한 나무라고 적혀 있다.

은행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도 강하다. 그래서 나무가 병에 걸리거나 은행나무 냄새를 맡은 숲속의 또다른 침입자인 벌레들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좀처럼 벌레들로부터 습격을 당하는 일이 적다고 한다.

나는 잠시 은행나무 숲길을 걷다 숲 언덕에 앉아 은행나무 사이로 태풍이 지나간 가을하늘을 보았다.

파아란 도화지에 노란 물감을 뿌려 놓은 것 같다. 나는 그런 은행나무를 좋아한다. 지난해 이맘때도 나는 이곳 은행나무 밑에서 내 어릴 적 중학생인 내가 자전거를 타고가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던 지금은 고목이 된 은행나무를 생각했다.

조선의 6대 왕이자 어린 왕 단종이 마을에 살던 나는 어린왕자의 숙부인 수양의 추악한 권력에 더밀려 깊은 숲길로 유배 온 단종을 묵묵히 지켜봤을 그 은행나무 아래에서 조선의 부끄러운 역사를 생각했다.

태풍이 지나간 오늘. 이 은행나무 밑에서 나는 언젠가 내가 읽었던 동화 ‘책 읽는 루브르’의 주인공 소년처럼 은행나무에 기대어 앉아 이 숲이 내게 주는 산소와 수북이 쌓인 은행열매들을 보며 이 숲의 주인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이 은행나무들이 모여 만든 숲이 내게 준 것처럼 나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행복을 줄 수 있는 있는 사람일까? 하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읽은 마음이 따뜻한 동화, 나무들을 황무지에 심은 양치기가 있는 ‘나무를 심은 사람’이나 장애를 가진 소녀를 위해 피아노나무가 되어 준 동화 속의 주인공 가문비나무가 있는 ‘피아노가 되고 싶은 나무’ 같은 마음이 따뜻한 책을 사서 세 번째 이곳을 방문할 때는 은행나무숲 주인에게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곳 은행나무숲에는 나무를 심은 사람 같은 양치기 목동을 닯은 숲의 주인과 사람들에게 10월의 노오란 행복을 나눠주는 가문비나무 같은 마음을 가진 은행나무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은행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로 달려가 은행나무잎 위에 앉는다.

엽록체가 일으킨 화학반응이라도 하는 걸까. 오늘 하루 가을 햇빛은 태풍에 견디며 서있는 은행나무 숲을 더 노랗게 색깔을 입히고 있다.

나의 일상의 하루는 뿜어대는 자동차 매연과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그러나 이곳의 시간은 그런 바쁜 시간들을 느리게 묶어버렸다.

그 대신 은행 숲이 만든 풍경과 나무들이 뿜어주는 맑은 산소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치유하고 있었다.

저물 무렵. 은행나무들은 해발 700m가 넘는 차가워진 바람소리를 은행잎의 흔들림으로 내게 전한다.

이 은행나무들이 사는 숲속. 벌써 겨울을 준비하는 걸까.

은행나무들은 태풍 ‘콩레이’가 지나가며 뿌린 비바람에 무거워진 은행잎들을 내가 겨울옷으로 갈아입듯 후두둑 털어낸다.

10월. 해발 700m의 이 숲은 사람과 나무들이 소통하는 30일의 소통공간이다.


그런 공간을 내어준 양치기 같은 이곳 은행나무숲을 가꾼 주인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내년 10월을 기약한 채 노오란 은행나무 숲을 빠져나와 44번 국도를 달렸다.

syi23@fnnews.com 서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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