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구동존이'로 가자

      2018.10.10 16:41   수정 : 2018.10.25 09:00기사원문


10일 제주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함은 논란 끝에 불참했다. 일장기의 붉은 태양 주위로 아침 햇살이 퍼져나가는 걸 형상화한 욱일기가 논란의 불씨였다. 애초 이를 전범기로 보는 한국 여론이 수용하긴 어려웠다.



욱일기 충돌 이전부터 한·일 관계는 삐걱거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해산 수순에 접어든 게 그 징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이를 통보했다. 이는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12월 한·일 양국이 맺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한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올 들어 한·일 당국 간 각종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신한일어업협정은 무력화 단계로 진입한 인상이다. 김대중정부 때 체결한 이 협정은 상대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이 가능한 어선 수 등을 매년 협상을 통해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까지 3년째 갱신하지 못하고 있다. 협상 결렬에 따른 피해는 태평양 어장을 가진 일본에 비해 우리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국내 여론은 당연히 이를 일본의 '외교 갑질'로 인식한다. 문제는 욱일기 소동에서 드러났듯 일본 사회의 전반적 기류는 이와 판이하다는 점이다. 몇 년 전 필자는 도쿄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일본 언론인들과 한·일 과거사를 토론하며 이를 체감했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 기자단의 문제 제기에 일본 언론인들은 "도대체 몇 번이나 더 사과해야 하느냐"며 일본 사회의 '사과 피로증'을 언급했다.

당시 토론 현장에서 어느 책에서 읽은 메타포가 떠올랐다. "우산을 함께 쓰면 연인이 되지만, 함께 비를 맞으면 동지가 된다"는. 물론 한·일도 근대사에서 차가운 역사의 소나기를 함께 뒤집어쓴 적은 있다. 숱한 조선 여성이 일군의 노리개로 끌려가고,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희생된 조선인들이 한둘이었나. 하지만 우리로선 원치 않는 억울한 희생이었다. 그래서 한·일 양국은 어차피 연인은커녕 살가운 우방이 되기도 어려운 이웃이다. 가해자인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 없이는 말이다.

그렇다고 일본과 영원히 담을 쌓을 것인가. 현대사를 되짚어 보자. 지난 8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았다. 일본문화 개방 등 교류협력 확대를 지향하는 이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당시 여론은 우려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외려 이후 일본 열도를 달군 한류 열풍의 싹을 틔웠다. 박정희정권의 한·일 수교 결단 때도 여론은 비판 일색이었다. 그러나 대일청구권 자금이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의 종잣돈이 돼 1960~70년대 고도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다행히 올 들어 한·일 간 민간교류는 활발하다. 최악의 취업난을 맞아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우리 청년이 늘어나고,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도 다시 증가세다. 얼마 전 일본 외무성이 구성한 전문가회의가 청소년 교류 확대를 제언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양국 모두에 이롭다는 건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는 이중의 과제를 안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원칙 있게 대응하되, 그 과정에서 일본 내 혐한정서가 고개를 들 개연성도 늘 경계해야 한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했지만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동북아의 경제·안보 지형이 요동치는 지금 한·일 관계에도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실용적 자세가 필요할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