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용 미매각 회사채·IP담보부 회사채 인수실적 0건"...시장상황 못 읽은 금융당국

      2018.10.26 01:00   수정 : 2018.10.29 20:3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최경식 기자]
재작년 금융당국이 중소.중견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과 원활한 자금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내놨던 방안들이 지금껏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하고 유명무실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전에 방안들이 효력을 가지기 어려운 시장상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미흡하게 내놓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7월 금융위원회는 '회사채시장 인프라 개선 및 기업 자금조달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금융위는 중소.중견기업 회사채 발행지원의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중신용 등급(BBB~A) 중소.중견기업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회사채 인수지원 프로그램'(주무기관 산업은행)과 지적재산권(IP) 담보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IP담보 회사채 활성화 프로그램'(주무기관 산업은행, 기업은행), 저신용 등급(BB 이하) 중소.중견기업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신 유동화보증 프로그램'(주무기관 신용보증기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회사채 인수지원 프로그램은 산업은행이 중신용 등급 중소.중견기업 미매각 채권을 2년 동안 최대 5000억원 범위에서 인수 지원하는 것이다. 인수대상 회사채 발행 기업 선정은 사전에 산은과 증권사, 신보가 협의해 결정하고, 미매각이 발생한 회사채는 총 발행 규모의 일정범위(30%)내에서 산은이 인수한다. 매입한 채권은 만기보유하거나 신용보강을 통해 높은 신용등급의 유동화 증권으로 전환해 시장에 매각한다. 이를 통해 금융위는 증권사의 회사채 미매각에 대한 부담이 경감됨에 따라 중소.중견기업 중신용 회사채 발행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실로부터 단독 입수한 2016년 이후 산업은행 중소.중견기업 미매각 채권 지원 실적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중신용 등급(BBB~A) 중소.중견기업 회사채 직접 인수를 지난 2016년 5건(625억원), 2017년 1건(175억원) 진행했지만, 금융위의 회사채 인수지원 프로그램에 의한 미매각 회사채 인수(SPC 유동성 공급 포함) 실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직접 인수 실적은 기존 산은과 꾸준히 거래해온 회사들과 진행된 것이다.

회사채 인수지원 프로그램은 중개회사(증권사)가 중신용 등급 채권을 인수해 시장에 매각하고 미매각분이 발생할 경우 산은이 이를 지원하는 것인데, 시장에서 미매각이 일어나지 않아 지원 필요성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투자자들이 AA등급 이상 우량한 회사채만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회사채를 발행했다가 미매각이 발생하면 그 자체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기 때문에 중신용 등급 중소.중견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주저하고, 중개회사도 중신용 등급 회사채를 취급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시장 상황이 비교적 양호해 중신용 등급 중소.중견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도 다른 수단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한 측면도 다소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금융위는 IP담보 회사채 발행 촉진을 위해 산은과 기은을 중심으로 1000억원 규모의 IP담보 회사채 활성화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NPE펀드를 통해서도 최대 300억원 규모로 회사채 발행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IP담보 회사채 인수 실적 또한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는 지난 2016년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 IP담보부 회사채 발행 실적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인수 프로그램이 가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IP NPE펀드를 통한 지원도, NPE펀드가 IP담보부 회사채를 인수할 수 있도록 투자 대상을 변경했지만, 국내 IP담보 회사채 발행이 전무해 인수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IP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IP담보 회사채 보다는 조달과정이 간편하고 금리가 낮은 IP담보 대출을 선호함에 따라 산은, 기은은 기업의 요구가 많은 IP담보대출 위주로 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신보가 올해까지 저신용 등급의 중소.중견 회사채 발행을 1.4조원 규모로 지원하고, 기존 신보 지원프로그램을 고려할 경우 최대 4조원 발행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신 유동화보증 프로그램도 논의만 있었을 뿐 실제로 진행되지 않아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신 유동화보증 프로그램의 경우 지원대상 회사들을 50개 이상 확보해 대규모로 SPC(특수목적회사)에 넘겨 진행해야 하는데, 지원이 필요한 중소.중견 회사들은 산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특정시점에 50개 이상 회사를 한 번에 모으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전해철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지원금액 규모까지 숫자로 명시하며 야심차게 방안을 발표했지만, 애초부터 시장 상황 상 방안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었다며 "저간의 시장 상황을 사전에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고 미흡하게 방안을 내놓은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무기관과의 협의도 적절히 이뤄졌던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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