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족집게 감별로 위폐발견량 60% 책임집니다"
2018.11.01 17:37
수정 : 2018.11.01 17:37기사원문
"돈방석에 앉아보실래요?"
은행원이 기자에게 권했다. 자신이 앉아있던 벤치를 양보하면서 건넨 말이다. 평범해 보이는 벤치 속을 들여다보니 못쓰는 지폐와 동전이 가득 들었다.
국가정보원 출신 은행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예상했던 이미지는 이랬다. 어딘지 모를 비밀스러움과 절제된 언행, 규율을 중시하는 태도. 어느 것 하나도 맞는 게 없었다. 이 센터장은 인터뷰 내내 쉼없이 말을 이어갔고 비유와 농담을 즐겼다.
"제 이력이 좀 특이하죠. 따지고 보면 친정인 은행으로 돌아온 겁니다."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1995년 당시 외환은행에 입행했다. 6년간 근무하면서 외화수출입, 외국환규정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때론 연차에 비해 막중한 임무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는 '화폐'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로화 통용 이전에 쓰였던 50프랑 지폐를 들어보이며 꿈꾸듯 말했다.
"이 화폐를 보세요.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초상화와 여기 왼쪽에 있는 어린왕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자외선을 쬐면 나타나는 양 한마리…."
좋아서 하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 누군가에겐 일상적 출퇴근길이지만 그에겐 매일이 화폐 전문가로 가는 길이었다. 국가정보원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범죄담당, 위폐분석 담당관을 맡은 것도 그쯤이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최고에 달할 때쯤 그는 이제 시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13년 중반 그는 하나은행으로 적을 옮겼고, 그의 이동과 동시에 위변조대응센터 설립도 급물살을 탔다.
그가 최고의 자랑거리로 삼는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는 영업점에 원화와 외화현찰을 공급하는 일이 주요 업무지만 은행 내 취급하는 모든 화폐에 대한 위변조 여부도 검수한다. 위변조 화폐를 걸러내는 독립부서를 둔 것은 시중은행 중 하나은행이 유일하다.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는 현재 전문인력 15명이 근무 중이며 하루 최대 100만장의 화폐를 전수검사해 영업점에 공급한다. 위변조대응센터 유리벽에 '자본시장에 건강한 혈액을 공급하고 화폐의 신뢰를 보증한다'는 말이 써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위변조 화폐를 걸러내는 저 기계가 대당 3억원이에요. 저희는 4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시중은행에서는 이런 시설을 갖춘 곳이 없습니다."
위변조대응센터의 외관은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15명의 전문직원들이 흰가운을 입고 일하고 있으며 사무실은 투명유리로 제작돼 바깥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다. 센터를 짓는 데만 20억원 이상 들었던 만큼 내부적으로 반발도 심했다. 하지만 위변조대응센터가 외화 재사용을 통해 연간 20여억원의 수익을 내면서 반발 역시 사그라들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최근 3년 위폐 발견량은 연평균 1168장(미화 16만달러)인데 이 중 60%가 하나은행위변조대응센터를 통해 걸러지고 있다.
은행원의 틀을 깬 그는 자기 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진짜 은행원'이 됐다. 그에게 비결을 묻자 "똑똑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그는 손등으로 책상을 '똑똑' 두드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똑똑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요즘 신입직원들 보면 하나같이 화려한 스펙을 갖추고 있죠. 그 때문에 대접받길 원하지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엔 인색해요. 자꾸 두드리세요. 묻고 도움을 청하면 길이 열립니다."
wild@fnnews.com 박하나 기자